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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모리스 마이너스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안녕하세요 모리스 마이너스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리뷰] 모리스 마이너스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인류의 모든 역사는 드라마틱하다.

그 중에서도 중국 현대사는 특히 드라마틱하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 가장 큰 문명이었다. 이 큰 나라가 지난 수천 년 간 지속해 왔던 전근대적 사회구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1세기 만에 현대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십 년 간의 전쟁과 혁명, 사회주의 국가 건설, 그리고 개혁과 개방이라는, 실로 고통스런 역사의 무게를 견뎌내었다.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는 이 드라마틱한 중국 현대사가 갖는 의미를 깊이 있게 설명해 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이 책은 통상적인 역사서와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대다수의 역사서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한다. 중국 현대사에 대해 나와 있는 다른 많은 책들도 그렇다. 그와 달리 이 책에서는 사건들 자체에 대한 상세한 서술보다는 그러한 사건들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결과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며, 그래서 통상적인 역사서보다 읽기가 훨씬 힘들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심심할 때 재미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어려운 교과서를 공부하듯 찬찬히 생각을 많이 해가며 읽어야 할 책이다. 그래서 이미 중국 현대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야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이 이야기하는 중국 현대사의 의미를, 세 가지 포인트 및 세 가지 사건과 관련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세 가지 포인트는 중국혁명의 역사적 의의, 관료제의 지배를 둘러싼 정치사상적 투쟁, 도시와 농촌 간의 모순이다. 그리고 세 가지 사건이란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개혁개방을 가리킨다.

중국혁명의 역사적 의의

지난 100년 동안의 중국 현대사는 혁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청나라는 19세기 들어 쇠락의 길을 걸었고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다. 20세기 초가 되자 더 이상 청조의 지배는 유지될 수 없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혁명이 필요했다. 단지 청나라 황실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사회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하던 낡은 사상과 문화, 관습의 굴레도 벗어던져야 했다. 혁명이 필요하다면, 도대체 어떤 혁명이 필요한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혁명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부르주아 혁명, 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그러니까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나아가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이다. 당시까지 서유럽 열강들은 때로는 아래로부터의, 때로는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상태였다. 그럼, 중국도 이런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가? 손문(쑨원)이 창립한 중국국민당은 바로 그런 부르주아 혁명세력을 대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혁명세력,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 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세력이 나타났다. 사실, 중국 같은 후진적인 전근대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교리와는 맞지 않는 발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서 사회주의의 물질적 준비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사회주의의 건설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의 청년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면서 공산당을 조직해 거대한 사회운동으로 키워 나갔다. 그들은 가장 진취적이고 가장 강인한 젊은이들이었고, 그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바로 모택동(마오쩌둥)이었다. 왜 모택동 같은 뛰어난 젊은이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들의 운동은 왜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토록 대단한 세력을 얻을 수 있었는가? 마이스너는 이를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던 중국사회의 현실이다.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사회를 수호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은 중국혁명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가 되어야 했다. 민족주의, 즉 反제국주의는 곧 당시의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대안적인 근대화 모델, 즉 사회주의 혁명이 매력적인 목표로 다가왔다. 다른 하나는 당시의 주요 혁명세력이었던 국민당이 전근대적 지배계급, 즉 지주계급과 타협하면서 반민중적인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완수하려면 반드시 지주계급의 지배를 철폐해야 했고, 그와 관련된 모든 낡은 사상과 문화, 관습도 뒤집어엎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당은 그럴 만한 의지와 역량을 갖지 못했다. 보다 철저한 근대화를 염원하던 많은 엘리트, 지식인, 청년들, 그리고 지주계급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의 땅을 갖고 싶었던 수많은 농민들은 더 철저한 혁명세력인 공산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국민당은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도주했고 대륙에서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해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럼, 공산당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했는가? 적어도 초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공산당은 전근대적 지배계급을 일소하고 낡은 사상, 문화, 관습을 뒤엎은 다음에,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해 나갔다.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회주의가 바람직한 근대화 모델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 것은 1949년이었고, 농업 집단화와 상공업 국유화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개혁,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이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사회주의 체제는 불과 20여년 정도밖에 존속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이 오늘까지도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1980년대 이후, 또는 더 늦게 잡아도 1990년대 이후의 중국은 분명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지난 100년 동안의 중국혁명이 사회주의라는 우회 경로를 거치긴 했으나 결국에는 자본주의 건설이라는 방향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어찌 보면, 중국의 역사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사회는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한 단계에 있었고 마르크스의 원래 사상에 의하면, 역사를 건너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산당, 즉 중국을 이끈 혁명가들, 특히 모택동은 주관적 의지를 통해 건너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모택동이 죽고 난 후, 등소평(덩샤오핑)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역사의 객관적 조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했던 공산당이 결국엔 부르주아 혁명의 담지자요 자본주의의 건설자가 되었던 것이다.

관료제의 지배와 정치, 사상적 투쟁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 시도는 왜 실패했나?

중국공산당은 왜 자본주의 건설로 방향을 전환한 것인가? 아쉽게도 이 문제에 대한 마이스너의 설명은 좀 불충분해 보인다. 20세기의 “현실 사회주의”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었는가에 대해, 이제는 적어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학문적 해명이 웬만큼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경제학 분야에서는 공공소유와 중앙계획경제로 구성되는 사회주의 경제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로 구성되는 자본주의 경제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본질적 성격은 소련 사회주의나 중국 사회주의나 동유럽 사회주의나 북한 사회주의나 모두 매한가지다. 하지만 나라마다 경제발전수준과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이 꽤 달랐기 때문에, 경제적 모순이 나타나는 양상도 사뭇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사회주의 경제의 이런 특수성은 마이스너의 이 책에서는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이스너가 경제학자가 아니고 역사학자이며 더욱이 지성사, 사상사를 전공한 학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편, 현실 사회주의가 비효율적이었을 뿐 아니라, 당초의 이상과 달리 상당히 불평등한 사회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불평등

정치적으로 불평등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질라스(Milovan Djilas)는 일찍이 1950년대에,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자들인 공산당원들이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그는 곧 실각했다.) 질라스가 개탄한 현실은 유고만이 아니고 모든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공통적 현상이었다. 어느덧 공산당원들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봉사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는 관료계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사상적으로 철저한 감시와 통제 체제를 수립했다. 스탈린 통치 시대의 소련에서는 피의 대숙청이 여러 차례 벌어졌고 그야말로 처참하고 가혹한 탄압이 이어졌다. 스탈린 사후에는 그런 극단적 억압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민주주의의 부재, 정치적 독재와 통제는 계속되었다. 그럼, 중국의 현실은 어떠했나? 이 측면에 대해 마이스너의 책은 아주 뛰어난 분석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당시의 중국은 혁명 직후의 소련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에는 공산당이 아니었던 많은 사람들, 민족주의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엘리트와 지식인들이 많이 참여했고 공산당은 “신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화합의 정치를 표방했다. 하지만 화합의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

농업을 집단화하고 상공업을 국유화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반발과 갈등을 낳았다. 이런 반발과 갈등을 진압하려면 독재정치가 불가피했다. 그리고 새로 수립된 체제의 주요한 권력은 모두 공산당원들이 장악했다. 이렇게 중국에서도 역시 공산당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었다. 그리고 反우파 투쟁의 명목 아래 비공산당계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모택동 시대의 중국 정치도 스탈린 시대의 소련 정치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요 거의 神으로 숭앙받았던 모택동의 사상과 행동이 스탈린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앞에서 언급한 질라스처럼 공산당 관료조직이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의식했고, 자신이 본래 품었던 공산주의의 이상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모택동은 공산당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가혹하게 탄압했지만, 끊임없이 대중노선을 주장하면서 당이 인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산당 간부들이나 장차 간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청년 엘리트들은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빈번하게 “하방”(下放)되어 인민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소련에서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빈 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그저 빈 말만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은 분명 주인은 아니었다. 주인은 역시 공산당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공산당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당 간부들을 비판하고, 당보다 앞에 서서 진짜 주인의 자리에 서라는 격려를 받았다. 공산당 관료제의 지배라는 현실과 모택동식 대중노선의 실천은 서로 상충하는 면이 강했고 따라서 많은 갈등과 분쟁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이야기할 문화혁명은 바로 그런 투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중국에서 벌어진 정치, 사상적 투쟁의 특수성이 나중에 중국식 개혁, 개방의 특수성을 규정한 기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표방하며 개혁을 추진했을 때 일반 인민의 태도는 수동적이고 냉담했고 비관적이었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일단 등소평(덩샤오핑)이 “사상해방”의 분위기를 만들어주자, 일반 인민, 즉 농민과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나서서 공산당이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개혁과 개방을 이끌고 나갔다. 역설적이게도, 소련에서는 공산당 지배체제가 무너짐으로써만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가능했지만, 중국에서는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공산당의 통치를 크게 위협하지 않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강화해 주었다. 이런 차이점은 중국 공산당이 소련 공산당과 달리, 인민과 훨씬 밀착한 조직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미 사회주의 시대부터 인민이 훨씬 능동적이었고 때로는 당을 비판했으며 당 간부들이 인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던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변화의 시기에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했다. 이런 이야기가 모택동 개인의 특성으로 중국 정치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모택동의 사상과 행동 역시 중국의 역사와 사회의 특수한 맥락,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이 걸어온 길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모택동이라는 특수한 개인이 최고 지도자로 선택된 것 자체가 시대의 요구였다는 이야기다. 모택동이 요구한 대중노선, 그리고 그가 인민에게 격려한, 당에 대한 비판은 당시의 중국에서는 특별히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모택동의 요구에 열렬하게 호응하였다.

모리스 마이너스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리뷰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