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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과 불완전한 정책 처방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과 불완전한 정책 처방에 대해 리뷰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과 불완전한 정책 처방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과 불완전한 정책 처방

이제, 프리드먼이 이야기하는 핵심 논지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프리드먼이 재밌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지만, 핵심 논지는 간단하다. 세계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기술과 금융, 그리고 정보다. 오늘의 시대는 기술과 금융, 그리고 정보의 유통이 고도로 발달한 결과,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시대다. 프리드먼은 이런 시대적 특징을 가리켜 “세계는 평평하다”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리드먼은 기술과 금융, 그리고 정보의 발전이 갖는 본질을 “민주화”라고 특징짓는다. 기술, 금융, 정보가 단순히 발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접근가능해졌고 그 결과 대다수 사람들이 파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술의 민주화, 금융의 민주화,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리고 이런 민주화 덕분에 경제적 번영이 가속화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는 평화까지도 가져다준다. 프리드먼은 이를 “황금 아치 이론”으로 설명했다. 즉 미국 햄버거 회사 맥도널드가 진출해 있는 나라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금 아치는 맥도널드의 상징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나온 직후에, 나토가 세르비아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에는 맥도널드가 있었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황금 아치 이론이 나오자마자 깨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나토와 세르비아가 신속히 전쟁을 끝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황금 아치 이론이 이야기하려는 기본 논지는 옳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세계화 시대는 멋진 세상이라는 이야기다.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이런 혜택을 누리려면

세계 각국은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을 입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황금 구속복이란 흔히 이야기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세부적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복잡해지지만, 아무튼 요지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기본질서와 제도를 수용해야만 세계화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만약 황금 구속복을 입지 않으면, “전자 투자가들”(electronic herd)이 그 나라를 외면한다고 말한다. 전자 투자가들이란 투자할 곳을 찾아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는 자본가들을 가리킨다. 자본가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직접투자를 하는, 즉 공장을 짓고 실제 사업을 영위하는 다국적기업들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금융투자만 하는 금융자본들이다. 이들 전자 투자가들이 찾는 곳이 되어야, 그래서 투자할 자본이 많아져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프리드먼의 생각

나는 프리드먼의 이런 생각, 그러니까 세계화 주도세력의 공통인식은 세계화를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과 금융, 정보의 발전이 세계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켜 “민주화”라 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올리브 나무에 대한 지적을 했지만, 세계 대다수 사람들에 대한 기술, 금융, 정보의 긍정적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게다가 그 긍정적 영향력이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대다수 사람들이 파워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이나 인도의 경제성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치적 파워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종전보다는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정치적 파워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 집단이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기술, 금융, 정보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 금융, 정보가 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또는 기술, 금융, 정보의 발전과 이에 따른 경제성장이 민주주의 발전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정치의 발전은 사회, 문화, 정치 같은 영역에서 다차원적인 제도와 이념의 변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변혁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사회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황금 구속복에 대한 이야기도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드먼이 말하는 황금 구속복의 이론적 원본은 그 유명한 “워싱턴 컨센서스”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본래 1980년대 말에,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남미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이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바람직한 경제정책의 목록을 정리한 것이었다. 당시 이 목록을 정리하고 이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을 붙였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antional Economics)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이 여러 차례 글을 써서 밝혔듯이, 워싱턴 컨센서스는 사실 컨센서스가 아니었다. 경제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고,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여러 논점에서 엇갈렸다. 또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가 시장 근본주의 또는 자유시장 만능주의의 상징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내용 중에는 케인즈주의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니까 컨센서스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나머지 여러 가지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프리드먼이 제시하는 황금 구속복의 목록은 당초 워싱턴 컨센서스의 그것보다 더 길고 자세하며 조금 더 시장만능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무리한 주장인 것 같다. 즉 황금 구속복이 바람직한 경제정책을 정리한 이상적인 목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황금 구속복의 목록에 들어 있지만 실제로는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있고, 반대로 중요한데도 이 목록에서 빠져 있는 것도 있다.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전자 투자가들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 투자가들은 황금 구속복을 안 입었거나 불완전하게 입은 나라들에도 자주 찾아간다. 그들의 동물적 투기감각에 따라!

세계화의 위기 가능성과 극복 방향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낙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화가 위기에 부딪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식의 위기가 세계화 과정에서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고, 또 나타나리라고 예언한다. 또, 세계화의 다른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도 꽤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그런 측면보다는 역시 낙관적인 측면이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세계화의 내재적 힘이 언제든 이를 극복할 것이며,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 측면이 더 압도적이라는 식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폴 크루그먼이 이 책의 서평에서 지적한 점을 소개하고 싶다. 크루그먼은 세계경제의 번영과 위기를 함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은 프리드먼이 이야기하는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논리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식 거시경제학, 즉 케인즈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전통적 논리라고 말한다. 특히, 1990년대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은 전형적으로 케인즈가 말한 수요불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거꾸로, 같은 시기에 나타난 미국경제의 번영을 세계화의 혜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을 확실히 입증하려면, 전문적인 경제이론과 이에 바탕한 실증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프리드먼은 그런 이론과 분석 없이, 막연히 세계화라는 새로운 추세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본다. 하지만 새로운 추세가 나타났다 해도, 그 추세의 밑바탕에는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적 특징과 운동법칙이 깔려 있다. 기본적 토대를 보지 않고, 그 위에 덧붙여진 새로운 부분만 관찰해서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프리드먼은 세계화의 위기 가능성

황금 구속복이 기본적 해결책이라고 본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의 좌파와 우파는 세계화를 추진하자는 데에는 대체로 생각이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따라 그들이 전 세계에 권고하는 정책처방은 황금 구속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파와 우파도 꽤 있지만, 그들은 미국의 주도적 엘리트 집단은 아니다.)

미국의 좌파와 우파가 생각이 다른 부분

그러니까 그들을 좌우로 가르는 기준은 사회안전망, 즉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에 있다. 프리드먼은 세계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쪽, 즉 클린턴식 좌파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이 책 전체는 좌파와 우파가 생각이 같은 부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얼마 전에 소개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점에서도 나는 프리드먼의 책에 대해 유감이다. 요즘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프리드먼은 이 책을 거의 10년 전에 썼는데, 언제든 이런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예언한 바 있다. 그의 예언대로 위기는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낙관적 전망의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 또 이런 식의 금융위기를 방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그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처방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인가? 아무튼 프리드먼의 전망대로 이번 금융위기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극복되고, 세계화에 따른 번영이 지속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낙관해도 좋은 것인지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책 전문가들이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정책방향에 대해 또 많은 이야기를 내놓을 것 같다. 조만간 그런 이야기를 잘 정리한 좋은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책은 프리드먼 같은 저널리스트보다는, 전문적인 경제학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과 불완전한 정책 처방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