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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칼짐머의 진화

오늘은 칼짐머의 진화에 대한 리뷰를 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칼짐머의 진화

진화론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의 PBS TV에서 방영된 7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함께 집필된 것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답게 아주 재미있고 생생하다. 나는 대학입시를 위해 고등학교 때 생물 과목을 달달 외웠던 것 말고는 생물학이나 진화론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교양을 좀 쌓으려고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을 읽었다. 도킨스의 책들은 아주 잘 쓴, 흥미로운 책들이었지만, 내게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공부의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닌가. 좀 더 입문적인 책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이 책은 바로 그런 요구에 부응하는 입문적인 책으로서 아주 적합했다.

진화론의 탄생

이야기는 청년 찰스 다윈이 1831년 가을 영국 해군 소속 비이글호의 세계일주 항해에 합류하는 데서 시작한다. 과학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청년 다윈은 5년 동안의 세계일주 항해를 통해 어엿한 자연사학자로 성장했고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꾸준히 연구에 정진한 끝에, 1858년 마침내 진화론을 설명한 논문을 학계에 발표했다. (또 다른 자연사학자 알프레드 월리스도 본질적으로 같은 이론을 함께 발표했다. 진화론을 좀 더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판되었다.)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은 어느 날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아니었다. 18, 19세기 영국, 그리고 유럽의 과학계에서는 진화론의 선구라고 할 만한 여러 가지 연구와 학설이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었다. 이런 선구적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진화론을 과학적 이론의 형태로 체계화하고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확실하게 제시한 것이 다윈(과 월리스)의 업적이었다. (월리스보다는 다윈의 업적이 훨씬 방대하고 더 정확하며 더 과학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월리스가 아니라 다윈이 진화론의 아버지로서 숭앙받고 있다.) 진화론은 당시까지 자연과 생명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실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기독교인이었던 당시의 유럽인들은 성서의 기록을 맹신하여, 神이 지금 존재하는 것과 같은 세상을 불과 수천 년 전에 창조했다고 믿었다. 특히 인간은 神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한 특별한 존재, 즉 만물의 영장으로 여겨졌다. 다윈이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런 기독교적 세계관에 反하는 증거를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이글호의 항해 과정에서 그가 먼저 알게 된 것은 지질학적 지식, 즉 지구가 대단히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로 큰 변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 즉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주 아주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진화론이 출발한 것이다. 다음으로, 다윈은 다양한 화석들을 채집했고, 그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에서 신기한 생물들을 관찰했다. 특히, 갈라파고스에서 관찰한 핀치라는 새는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들마다 특징이 현저히 달라서, 원래는 같은 종이 었지만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한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다윈은 더 많은 화석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인간에 의한 식물이나 가축의 인위적 품종 개량으로 식물이나 가축의 형질이 크게 변하며 새로운 종이 탄생하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관찰을 통해 그는 생명체들 역시 영원불변의 상태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으며,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진화론의 발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이 다윈이 진화론을 정립할 때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기 전공 분야 외의 다른 학문을 공부함으로써, 자기 분야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인 것 같다. 인구론에서 맬서스가 말한 요점은 이렇다. 인간이든, 다른 생물이든, 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용능력(carrying capacity)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체수(population, 즉 인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손을 낳는 데 열심히지만, 그 자손 중 많은 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 관한 한, 맬서스의 인구론은 근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은 환경의 수용능력을 크게 늘리는 기술을 발명해 냈고, 동시에 스스로의 출생률을 떨어뜨려, 매우 낮은 사망률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는 인구론의 기본 요점이 타당하다.) 모든 생명체의 사망률(특히, 번식 연령 이전의 사망률)이 아주 높다는 것으로부터, 같은 종의 개체들 중에서 승자 그룹과 패자 그룹이 나뉜다는 것, 승자 그룹은 패자 그룹보다는 생존과 번식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졌다는 것, 따라서 적합한 형질이 후손에 전해진다는 것, 그 결과 생명체의 지배적 형질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는 것 등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가리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책에 붙인 서문에서, 진화론은 다음 세 가지 사실만 알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첫째, 모든 생명체는 실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자손을 낳는다. 둘째,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라도 서로 다른 형질을 갖는다. 셋째, 이런 형질 중 적어도 일부는 자손에게 전달된다.)

유전자와 생명의 기원

다윈의 진화론에서 핵심적 요점 중 하나는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다윈은 이를 알지 못했다. 유전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수도사 멘델이 개척했으나, 멘델이 죽은 후에야 그 과학적 가치가 알려졌고, 후대의 과학자들이 이를 계승 발전시켜 유전학을 창조하였다. 20세기 전반기의 생물학자들은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의 과정은 유전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해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진화론과 유전학을 종합한 “현대적 종합론”이 현대 생물학의 본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전은 유전자(대개는 DNA, 경우에 따라서는 RNA)라는 특정한 물질이 부모로부터 자손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진화론에서 중요한 사항은 유전자의 복제가 항상 완벽하지는 않으며, 때때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런 돌연변이로 인해 새로운 유전자와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는데, 새로운 형질이 환경에 적합할 경우, 그 새로운 유전자가 그 생명체에 널리 퍼지게 되어, 결국 생명체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특정한 종 내의 생명체들이 어떤 환경 변화로 인해 지리적으로 격리되고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돌연변이의 축적으로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다. (환경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돌연변이는 유전자의 자기복제에서 일어나는 무작위적인 실수에 불과하다. 이런 무작위적 돌연변이 유전자 중에서 환경에 적합한 것이 살아남게 된다.) 유전자와 관련해 내가 특히 신기하게 생각한 내용은 생명의 기원이 바로 유전자에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보통 DNA(디옥시리보 핵산)라는 물질로 구성된다. DNA가 가진 유전정보는 RNA(리보핵산)라는 또 다른 물질이 세포 내의 단백질 공장으로 전달하여 단백질을 합성토록 하며, 그 결과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살아 움직이게 된다. DNA와 RNA, 그리고 단백질이 생명체의 기본 요소인 셈인데, 이것들은 인산과 염기, 아미노산이라는 물질로 다시 환원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산과 염기, 아미노산이라는 생명의 기본 요소들은 우주로부터 운석이나 혜성 같은 것에 실려 지구로 날아왔다는 게 유력한 가설이라고 한다. (근원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인 탄소, 수소, 산소 등은 우주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별들 속에 존재하는 원자들과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별들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다.) 아직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DNA, RNA, 단백질 중에서 RNA가 가장 먼저 생겨났으며, 이 RNA가 자기 복제를 하면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현대 생물학자들의 설명이라고 한다. 먼저 “RNA 세상”이 나타나고, 이어서 단백질이 나타났으며, RNA는 복제능력과 단백질 합성 능력을 함께 갖게 되었다. 이어서 RNA는 자신의 파트너인 DNA를 만들어냈는데, DNA는 RNA보다 변이를 덜 일으키는 안정적 성향을 갖고 있어서, 유전정보를 보관했다가 후손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RNA는 스스로의 코드를 편집하여 변이를 잘한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새롭게 배운 내용은 생명이 시작된 후, 진화의 최초 국면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흔히 최초의 단일한 어떤 생명체로부터 여러 종이 분화하고, 그 여러 종에서 또 여러 종이 분화해 나가며 가지를 치는 계통도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의 최초 국면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의 생명체는 동물이나 식물 같은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었다. (생명체는 크게 박테리아와 아카이아, 그리고 진핵세포 생물이라는 세 종류로 구별된다. 동물과 식물은 진핵세포 생물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물론 오늘날에도)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은 개체들끼리 유전자를 서로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초기의 생명체들인 미생물에서 유전자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 미생물에서 다른 미생물로 옮겨 다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생명의 나무에서 뿌리는 단일한 종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들로 구성된, 그리고 그런 유전자들이 서로 떠돌아다니며 섞이는 바다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유전자의 바다가 모든 생명체의 공통조상인데, 이로부터 박테리아, 아카이아, 진핵세포 생물의 세 종류가 갈라져 나왔지만, 그 후로도 인척관계가 먼 종들끼리의 유전자 교환은 계속되었다.

신기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보자.

거의 모든 진핵세포 속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세포의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식물세포 속에 들어있는 엽록체(광합성 작용을 한다)라는 세포 소기관은 본래 박테리아였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는 티푸스 박테리아(전염병 티푸스의 원인균)의 친척이고, 엽록체의 정체는 시아노 박테리아(바다와 민물 속에 살면서 빛과 물, 탄산가스를 이용해 산소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단지 일부 유전자만 교환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박테리아가 아예 진핵세포 속으로 침투하여 진핵세포 생물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그 결과 동물과 식물의 탄생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특정 박테리아들이 에너지를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화의 최초 국면, 즉 미생물로 가득했던 세상은 에너지를 생명으로 전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태어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제 스토리는 또 다른 신기한 이야기, 미생물보다 훨씬 복잡한 생명체인 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동물은 크게 보아 이배엽과 삼배엽 동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의 동물은 삼배엽성이다. 그리고 모든 삼배엽 동물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생물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에 거의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인 “혹스 유전자”와 “총지휘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절지동물인 초파리와 척추동물인 쥐는 서로 무지무지 다른 동물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의 유전자가 있다. 그래서 쥐의 유전자를 가지고 초파리의 눈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생명의 세계는 놀라운 다양성을 자랑합니다.

그 다양성 속에는 그보다 더 놀라운 공통성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