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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경제발전 전략으로서의 사회주의

경제발전 전략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읽어보았습니다.

[도서 리뷰] 경제발전 전략으로서의 사회주의

펠드만 모델의 성장전략

즉 고투자 및 자본재 중심 전략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구조 전환 과정을 내포한다. 투자를 많이 해서 공장을 많이 지어 놓으면, 거기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즉 농민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농업 부문의 노동 생산성보다 산업 부문의 노동 생산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이농이 진행되면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소득 수준은 크게 높아진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경제발전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농촌에는 잉여 노동력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농민이 농촌을 떠나도 농업 생산량은 줄지 않는다. 떠난 농민은 일종의 잉여 노동력인 셈이다. 이런 잉여 노동력이 많기 때문에 경제발전 초기에 도시 산업부문은 비교적 싼 임금만 주고도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어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이익은 다시 투자자금으로 사용되어 산업화가 계속 진행된다. 1950년대에 아서 루이스를 비롯해 여러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과정이 경제발전의 핵심적 측면임을 지적한 바 있다.

1930년대에 소련이 계획경제 방식

산업화를 추진했을 때에도 바로 이런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앨런은 소련식 계획경제가 이농에 따른 경제발전 효과를 최대화한 점에서 큰 장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에서 가능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의 이농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앨런은 소련식 계획경제에서 국유기업은 이윤 최대화가 아니라 생산 최대화를 목표로 행동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국유기업의 이런 독특한 행동양식을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사회주의 국유기업은 망할 염려가 없어 비용 절감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국유기업은 가능한 한 많은 설비, 많은 원자재를 사용하려 하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고용하려 한다. 이 때문에 소련식 사회주의의 산업부문에서는 자본주의보다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며, 이것 덕분에 더 빠르고 더 큰 규모의 이농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연성예산제약은 흔히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한 핵심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앨런은 잉여 노동력이 풍부한 경제발전 초기에는 이런 특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기업의 노동 생산성이 자본주의 기업의 노동 생산성보다 낮다 하더라도 농촌의 노동 생산성보다는 훨씬 높으므로 사회주의적 고용 최대화는 사회적으로 보면 더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 점에서는 앨런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앨런은 소련식 계획경제가 다른 측면에서는 도시 일자리를 크게 줄였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소련식 계획경제에서는 서비스 부문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취급해 억제하였다. 또는 대체로 소규모 사업체로 구성되는 서비스 경제는 소련식 국유 계획경제의 틀 안에 집어넣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국유 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는 한 서비스 부문이 발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과정, 그리고 그와 함께 진행된 이농 과정을 살펴보면, 산업 부문보다 오히려 서비스 부문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서비스 부문을 억압함으로써 도시 경제의 활력을 반감시켰고, 그 결과 소비생활의 폭을 제한함으로써 국민 복지 수준도 떨어뜨렸다고 할 수 있다.

인적자본 육성

소련은 단지 농민들을 도시로 이주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소련 국민 전체의 교육수준을 크게 높였다. 또 대중보건 시스템을 갖춤으로 건강 수준도 점차 높일 수 있었다. 교육과 보건의 측면에서 옛 사회주의 나라들이 비슷한 소득수준의 개발도상국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올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교육과 보건지출의 확대는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한 인재 양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으며, 이 점에서는 소련식 사회주의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은 소련이 인구증가율을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상태의 후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구증가율이 너무 높아 경제활동인구가 져야 할 부양 부담이 너무 크며 이 때문에 경제성장 속도가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인구 증가를 적절히 억제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교육수준의 상승, 특히 여성 교육의 확대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을 통해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다. 이 점도 소련 사회주의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후기의 경제 침체 원인

소련 경제는 1960년대 말까지는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나 1970년대 초부터 갑자기 침체 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렇게 20년 정도 침체 상태를 보내다가 결국 1990년대 초에 체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왜 고투자 고성장 전략이 갑자기 통하지 않게 된 걸까? 소련 경제를 연구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를 외연적 성장의 종료 후 나타난 내포적 성장의 실패로 설명한다. 외연적 성장이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한 성장을 가리키며 내포적 성장은 생산성 향상에 의한 성장을 가리킨다. 경제발전 초기에 소련 경제는 투자를 많이 하고 농민을 도시로 이주시킴으로써, 즉 생산요소 투입을 늘림으로써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소련식 계획경제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체제였다. 하지만 농민이 노동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끝나고 나자, 즉 잉여 노동력이 다 소진되고 나자 더 이상 생산요소 투입을 늘리기 어렵게 되었다. 이때에는 생산성 향상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데, 소련식 계획경제에서는 인센티브 부족 문제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앨런은 이런 설명의 일부분을 받아들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해석을 추가한다. 외연적 성장의 종료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더 필요하다. 더 이상 노동력을 동원하기 어렵게 되었다면, 대신에 자본 투자를 많이 해서, 즉 노동자를 자본으로 대체함으로써 계속 성장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앨런은 저명한 경제학자 마틴 웨이츠먼이 제시한 설명을 인용한다. 웨이츠먼은 1950년대 및 60년대의 소련 경제를 연구한 결과 소련에서는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자본과 노동의 결합비율이 일정한 생산함수를 가진 경제를 상상해 보자. 이런 경제에서는 노동자가 늘어나지 않은 채 자본만 늘릴 경우, 늘어난 자본은 유휴자본이 되어 버린다. 이런 경제를 가리켜 “레온티에프 경제”라고 부른다.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레온티에프 경제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대체 탄력성은 0이다. 웨이츠먼은 소련 경제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대체 탄력성은 0은 아니었지만 0.4 정도로 상당히 낮았다는 추정 결과를 얻었다. 참고로, 일반적인 시장경제에서 대체탄력성은 1 근방이다.

왜 소련 경제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잘 대체하지 못했는가?

주류 경제학자들은 계획경제 체제의 근본적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한 연성예산제약 같은 사회주의 기업의 행동양식이 낭비적 투자를 유발한다. 또 자본과 노동의 결합비율이 바뀌려면 혁신이 나타나 새로운 생산방법이 개발되어야 하는데, 계획경제에서는 인센티브 부족 때문에 혁신이 부진하다. 외연적 성장이 종료된 것과 내포적 성장이 부진한 것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앨런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런 설명을 무시한 채, 낭비적 투자를 유발한 다른 원인들을 찾는다. 그가 보기에 소련 경제 후기에 낭비적 투자가 만연한 것은 체제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부당국이 잘못된 투자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는 세 가지 잘못된 정책을 지적한다. 첫째는 새 공장을 짓는 대신 기존 공장의 설비 보수에 치중한 것이다. 이런 정책 때문에 투자된 자본이 충분한 산출 증대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둘째는 소련의 유럽 지방에 있는 지하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하자 시베리아 지방에서 대대적인 지하자원 개발 투자를 한 것이다. 이것도 비용을 너무 많이 들인 비효율적인 투자였다. 셋째는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휘말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한 것이다. 앨런은 소련 정부 지도자들이 이런 정책이 아닌, 더 지혜로운 정책을 폈다면 소련 경제는 그럭저럭 순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공장을 짓는 데 치중하고, 에너지 절약 및 지하자원 수입을 장려하며, 군사비 지출을 억제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앨런은 이런 정책을 펴지 못한 것을 지도자들의 상상력 부족 탓으로 여긴다. 이런 식의 설명이 타당할까? 내 생각에 앨런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앨런이 지적한 잘못된 투자 정책은 지도자들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계획경제의 근본적 특징에서 유발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새 공장이 아니라 기존 공장에 낭비적 투자가 이루어진 것은 사회주의 국유기업의 독특한 행동양식, 즉 연성예산제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계획경제 체제는 경쟁 체제가 아니라 독점 체제이다. 기존의 국유기업은 일종의 독점기업이고 이런 체제에서는 새 기업의 창설이 어렵다. 고비용 지하자원 개발이 계속된 것도 역시 연성예산제약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도 사회주의 체제와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앨런이 지적한 세 가지 잘못된 정책 외에도 계획경제의 근본적 특징이 소련 경제의 침체를 낳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론적, 실증적 연구 성과를 내놓은 바 있다.

왜 앨런은 그런 연구를 무시하는 걸까?

앨런은 이 책에서 소련식 사회주의가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으며 나름대로 성공한 부분도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회주의 시대 소련이 세계 평균과 비슷한 정도의 성장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앨런의 이야기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앨런은 그런 평균적인 정도의 성장실적을 얻기 위해 소련 국민이 치러야 했던 희생이 너무나 컸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물론 앨런도 스탈린의 정책이 너무 극단적이었다는 점은 지적하고 있다. 그는 농업 집단화 같은 극단적 정책이 아니라 NEP식 농촌경제의 지속으로도 괜찮은 성장 실적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NEP식 농촌경제와 국유 계획경제의 결합은 비현실적이다. 또한 스탈린 시대가 지나간 후, 훨씬 더 평화로웠던 후기의 소련 경제도 국민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유 계획경제라는 소련식 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는 비민주적인 체제였다는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앨런은 계획경제가 경제발전 초기에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경험은 오히려 시장경제로 전환함으로써 더욱 빠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물론 시장경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소련식 계획경제보다는 더 나은 체제라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평가가 앨런의 이단적 해석보다는 더 타당해 보인다.

경제발전 전략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읽은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