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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소련식 성장전략의 논리를 읽고 느낌점

오늘은 소련식 성장전략의 논리를 읽고 느낌점을 리뷰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소련식 성장전략의 논리를 읽고 느낌점

1917년 혁명 후 소련은 10년간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처음 몇 년 동안 내전을 겪었고 통치체제도 안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경제적 어려움도 컸다. 처음에는 무리하게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경제난 때문에 이내 포기하고 이른바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을 실시했다. NEP 시기 소련 경제는 국유화된 산업부문과 자작농으로 구성된 농업부문으로 이중화되어 있었으며 계획경제가 아닌 시장경제가 기본적인 자원배분 메커니즘이었다. 이 시기에 권력을 잡은 독재자 스탈린은 1928년부터 갑작스럽게 소련식 계획경제를 도입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이때부터가 진짜 소련 사회주의의 시작이었다. 앨런은 스탈린이 추진한 소련식 성장전략은 상당한 합리성을 가진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소련식 성장전략의 두 기둥은 중공업 우선 건설과 농업 집단화였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탈린이 이런 전략을 추진하기 전인 1920년대 중반에 소련 내에서는 앞으로 어떤 경제발전전략을 추진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이론가는 프레오브라젠스키와 부하린이었는데,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소련식 성장전략을 주창했고 부하린은 NEP 경제의 지속을 주장했다. 스탈린은 처음에는 부하린 편을 들었다가 나중에는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전략을 채택했다. (1930년대에 프레오브라젠스키와 부하린 두 사람 모두 실각했고 각각 1937년과 1938년에 처형당했다.) 소련의 경제학자 펠드만은 1920년대 후반에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정교한 성장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와 펠드만이 주장한 중공업 우선 건설 노선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전략이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앨런은 그들의 이론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실제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펠드만이 정식화한 성장모델을 보면, 나중에 주류 경제학계에서 로이 해로드와 이브시 도마가 최초로 제기한 성장모델과 기본적으로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이브시 도마가 1950년대에 펠드만 모델을 서방 학계에 소개하면서 지적했던 것이기도 하다.

펠드만 모델의 핵심

자본재 생산 부문에 대한 투자배분율을 높임으로써 경제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류 경제학의 표준적인 성장이론에서도 경제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투자율을 높이는 것, 즉 투자를 많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자본(생산활동에 쓰이는 자산, 즉 기계설비, 공장, 도로 등)을 축적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본을 축적하려면 자본재를 구해야 한다. 어떻게 구하나? 스스로 생산해 내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한국처럼 수출지향 산업화를 한 나라에서는 소비재를 생산해서 외국에 수출하고 그 돈으로 자본재를 수입해서 투자를 했다. 그런데 1920년대 말 당시의 소련은 주요 선진국과 적대관계였으므로 대외무역을 하기 쉽지 않았고 따라서 자본재를 스스로 생산해내야 했다. 그러려면 투자를 할 때 소비재 생산부문보다 자본재 생산부문을 우선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옷을 만드는 공장보다 기계를 만드는 공장을 우선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이상의 논리에는 별로 틀린 점이 없다. 주의할 점은 같은 중공업이라 하더라도 총포를 만드는 군수산업은 자본재 생산부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수산업은 펠드만 모델에서는 소비재 생산부문에 해당한다.

성장전략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비판

투자를 지나치게 많이 한 나머지 소비를 희생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소련 경제 연구의 개척자인 하버드 대학의 에이브럼 버그슨은 스탈린이 소련식 계획경제를 추진한 1930년대에 소련 사람들의 소비수준이 떨어졌다는 추정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앨런은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다시 검토해 보고 1930년대 초에는 소비수준이 떨어졌지만 중후반에 크게 회복되어 1930년대 말의 소비수준은 1920년대 말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소비의 관점에서도 1930년대의 성장전략은 성공이었다는 것이다. 앨런이 이 책에서 내놓은 이런 재추정 결과에 대해 여러 소련 경제 전문가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앨런이 이용한 자료가 얼마나 적절한가, 대표성과 신뢰성이 있는가와 관련한 비판이다. 내가 보기에도 앨런의 재추정 결과를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1930년대 중후반 당시의 많은 기록이 소련 농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도 생활은 어려웠으니까 1930년대에 소비수준이 딱히 떨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앨런처럼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농업 집단화와 사회주의적 원시 축적

소련식 계획경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은 농업 집단화였다. 왜 스탈린은 자작농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아 집단농장을 만들었나? 사회주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나? 주류 경제학자들을 포함해서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런 측면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도시 산업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식량과 투자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고 본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앞에서 말한 고투자 고성장 전략을 실현하려면 농촌의 소득 중 상당 부분을 빼앗아서 투자자금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농촌과 농업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으므로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저축은 농촌에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전략을 "사회주의적 원시 축적"(primitive socialist accumulation)이라고 불렀다. 농촌의 소득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을까? 프레오브라젠스키는 곡물 거래를 국가가 독점해 수매가격을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게 설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농민들이 곡물을 정부에 팔기보다 스스로 소비해 버리거나 아니면 생산을 덜 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1927/28년에 일어났다. 당시 소련의 도시에서는 식량을 구하지 못해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 소련 정부는 강제로 곡물을 징발해 오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스탈린은 집단농장을 만들었다. 농업 집단화는 자작농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모든 농민을 집단농장이라는 관료조직에 소속된 노동자로 만들어 공산당이 직접 농촌의 생산과 소비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당연히 농민들은 이에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다. 부농(러시아어로 쿨락)으로 지목된 수많은 농민들이 처형당하거나 유형당했고, 많은 농민들이 정부에 빼앗기기 싫어 가축을 도살해 버렸으며, 대혼란 과정에서 농업생산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대기근이 발생해 많은 농민들이 굶어 죽었다. 농업 집단화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적어도 수백만 명 이상, 아마도 5백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본다. 기근의 집중 피해 지역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방이었다. 이처럼 농업 집단화 이후 농촌경제가 피폐해졌음을 고려할 때,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의도했던 사회주의적 원시 축적, 즉 농업 잉여 추출을 통한 투자자금 확보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앨런은 기존의 이런 평가는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먼저 그는 농업 집단화 때문에 소련 농업의 성과가 나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집단화 초기에는 생산량이 크게 줄었지만 1930년대 중후반 이후 기계화가 진전되면서 생산은 회복세를 보였다. 게다가 집단화 과정에서 역축(draft animals)이 많이 도살되어 이들이 먹던 곡물 사료 수요가 줄어듦으로써 순곡물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고, 그 덕분에 도시로의 식량 공급 증대가 가능했다. 또한 193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되었다. 이것은 집단화 이후에 훨씬 적은 수의 농민이 생산한 식량으로 훨씬 많은 수의 도시 노동자를 먹여 살릴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농촌에서 식량을 빼앗아 도시에 공급함으로써 도시 산업경제의 건설을 뒷받침하겠다는 스탈린의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하지만 농업 잉여가 투자자금의 주된 원천이 되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1930년대부터 실시된 계획경제에서 투자의 주체는 정부당국이고 투자자금은 재정에서 나왔으며 재정수입은 세금으로 거둔 것이었다. 그럼 세금 부담은 누가 졌나? 농민이었나? 도시 노동자였나? 아마도 양쪽 모두 부담을 졌겠지만, 그 중 어느 쪽이 주로 부담을 졌는지가 문제이다. 앨런은 농민이 주로 부담을 졌다는 추정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여러 선행 연구와 크게 다른 결과이다.

앨런의 추정 결과가 옳다면

이는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이론이 옳았다는 증거가 되는가? 여러 가지 점에서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앨런의 추정 결과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1930년대에 국한된 현상일 뿐이다. 1950년대 이후 소련의 농촌경제는 오히려 도시 산업경제로부터 보조를 받는 부문으로 전락한다. 농업 생산량 증대는 농기계와 비료 등 산업제품의 대대적인 투입에 의해서만 가능했으며,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크게 미흡했기 때문이다.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한 사회주의적 원시 축적은 산업화 초기 잠깐 동안은 큰 의미가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의미를 잃고 말았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농과 산업화가 진행되어 경제 전체에서 농업과 농민의 비중이 급속히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둘째, 더 중요한 점은 프레오브라젠스키가 투자자금의 확보 방법을 잘못 생각했으며, 스탈린은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쁜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생각한 곡물 무역의 국가독점과 낮은 수매가격 설정은 농업생산 인센티브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며, 수매 자체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농업 집단화를 통해 강제로 농민에게서 잉여를 빼앗아 오는 정책을 실시했다. 스탈린이 이 방법으로 산업화를 이뤄내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농업 집단화는 잘못된 방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경험

농업 집단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농업 잉여를 산업투자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농민에게 유리한 가격정책을 실시했다. 그렇게 해서 농촌소득이 증가하자 많은 농민들이 스스로 산업부문에 투자해 기업가와 노동자로 변신했다. 정부에 의한 강제 저축이 아니라 농민들에 의한 자발적 저축으로 산업 투자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요컨대 개혁 개방 시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스탈린처럼 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농민을 우대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개혁 개방 초기의 정책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나중에는 다시 농촌에 불리하고 도시에 유리한 정책을 폈으며, 그 결과 도농 소득격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개혁 개방 시대 중국의 농촌 정책은 스탈린 시대 소련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앨런도 농업 집단화가 유일한 경로는 아니었으며, NEP식 농촌경제, 즉 자작농 체제가 지속되었다 하더라도 소련의 산업화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20년대 당시에 부하린도 그런 경로를 주장했다. 앨런은 그런 경로로 나갔으면 농업 집단화의 경우보다는 소련의 산업화 및 경제성장 속도가 더 느렸겠지만, 아무튼 비교적 좋은 실적을 올렸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 주의할 점은 앨런이 이 경우에도 도시 산업경제는 국유기업에 의한 계획경제 방식으로 건설한다는 소련식 성장전략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앨런이 말하는 NEP 모델이 집단화 모델과 다른 점은 산업투자를 위한 재정수입을 농민과 노동자에 대한 소득세로 거둔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런 가정은 현실적일까? 내 생각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자작농들에게서 충분한 규모의 소득세를 거두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 같고, 따라서 국유기업의 투자자금 확보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중국 개혁 개방 초기의 산업화도 농촌의 사기업이 주도해 시장경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농촌에서 충분한 규모의 저축과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개혁 개방 중기 및 후기의 산업화에는 많은 국유기업이 참여하긴 했으나, 그것도 역시 계획경제를 해체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한 결과였다. 또한 중국 국유기업의 투자자금은 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저축한 은행예금으로부터 나왔다.

이번시간에는 소련식 성장전략의 논리를 읽고 느낌점을 리뷰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