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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팜 투 팩토리

안녕하세요 이번시간에는 팜 투 팩토리라는 책을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리뷰] 팜 투 팩토리

20세기의 사회주의 실험

이것은 완전한 실패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과의 로버트 앨런 교수는 이런 평가에 이의를 제기한다. 앨런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성장 실적은 세계사적 견지에서 볼 때 상당히 뛰어난 것이었으며, 이는 소련 정부가 실시한 발전전략에 합리적인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대 이후 소련 경제는 침체했고 결국 체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앨런은 이것 역시 체제의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도자들이 잘못된 정책을 편 탓이었다고 말한다. 지도자들이 지혜로운 정책을 폈다면 소련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요컨대 사회주의는 작동 가능한 체제였고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앨런의 이런 주장은 통념에 도전하는 이야기라서 신선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그의 분석에는 허술한 부분이 많고 그의 결론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소련의 경제성장 실적

앨런은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러시아가 가난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나서 50여년이 경과한 1970년 무렵을 보자. 소련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물론 소련의 1인당 소득수준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보다는 훨씬 낮았다. 하지만 그 때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소련의 실적은 뛰어난 것이었다. 주요 국가 중에서 소련보다 더 좋은 실적을 올린 나라는 일본을 비롯해 몇 개 안된다. 소련의 성장 실적이 좋았다는 것은 지금 들으면 신선한 이야기 같지만, 예전부터 주류 경제학계에서 다 인정하던 사실이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였던 폴 새뮤얼슨은 그의 유명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소련 경제가 언젠가 미국을 따라잡을지 모른다는 예측을 제시하곤 했다. CIA는 소련의 국민소득 추계 작업을 계속하면서 소련 당국의 공식통계보다는 실제 성장률이 낮았다는 추정치를 내놓았지만, CIA 데이터로 보아도 1960년대까지는 고도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CIA 데이터는 지금까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체로 소련의 성장 추세를 잘 나타낸 괜찮은 추정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앨런이 중요한 포인트들을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소련이 망하기 전에 서방 학계에서 소련의 경제발전 수준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CIA 추계 결과에 의하면, 1990년 소련의 1인당 GDP는 미국의 43%, 1인당 소비는 31%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망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치를 의심하게 됐다. 실제로 가서 보니 소련 경제가 너무 낙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재평가 작업을 해보았는데, 전에는 얻을 수 없었던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이번에는 더 정확한 국민소득 추계가 가능했다. 이렇게 다시 추계한 결과로 보면 1990년 소련의 1인당 GDP는 미국의 32%, 1인당 소비는 24%로 나온다. 소련은 기껏해야 중진국이었고 소비만 놓고 보면 중하위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앨런이 인용하고 있는 소련의 GDP 데이터

재평가 이후의 것(저명한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이 1990년대에 재편찬한 데이터)이긴 하지만, 앨런은 단지 소련의 성장률이 높았다는 것만 강조하고 소득수준이 낮았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소련의 소득수준이 재평가된 후에도 과거에 CIA가 추계한 성장률 데이터는 대체로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즉 혁명 당시, 또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개시된 1920년대 말 당시 소련의 소득수준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는 혁명 이전의 러시아가 가난했다는 앨런의 이야기가 옳지만, 여기서도 약간 더 생각할 점이 있다. 앵거스 매디슨이 편찬한 세계 각국의 장기 GDP 통계를 보면, 1913년 현재 러시아 제국의 1인당 GDP는 세계 평균과 거의 같다. 즉 당시의 러시아는 그 시대의 기준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딱 평균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GDP와 소비 또는 복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하지만 소련의 경우에는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련은 과도한 군수경제를 비롯해 국민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낭비적인 부분의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소련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웠다는 점에서는 뛰어난 성장실적을 보였지만,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성과를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이 점을 감안해서 소련의 경제성장 실적을 재평가해 보면, 앨런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앵거스 매디슨의 데이터로 보면 1913년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세계 평균과 거의 같았고, 1990년 소련의 1인당 GDP는 세계 평균보다 30% 이상 높았다. 이 점만 보면 소련의 실적은 뛰어나다는 앨런의 이야기가 옳다. 하지만 소련의 GDP 중 군수경제 등으로 낭비된 부분을 감안하면 1990년 소련의 1인당 소비는 세계 평균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국민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소련은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해 역시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에서 종말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소련의 성장 실적은 특별히 좋은 것도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었다.

혁명 이전의 러시아 경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고 러시아가 계속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회주의 소련보다 자본주의 러시아가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을까? 앨런은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앨런의 주장은 저명한 소련 경제 전문가인 폴 그레고리의 생각과 정반대이다. 폴 그레고리는 혁명 이전 러시아의 경제성장 실적이 비교적 괜찮았으며 그대로 자본주의 발전의 경로를 걸었다면 사회주의 소련보다 더 좋은 실적을 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앨런과 그레고리 두 사람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러시아는 비교적 괜찮은 성장 실적을 기록했다. 다시 앵거스 매디슨의 데이터로 보면, 1870년에서 1913년 사이에 러시아 경제는 연평균 2.4% 성장했고, 1인당 GDP는 연평균 1.1%의 속도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저성장으로 보이지만, 그 시대까지 세계경제의 일반적 추세와 비교하면 제법 빠른 성장이다. 18세기까지 별다른 발전을 하지 못했던 러시아 경제는 19세기 전반기부터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고, 성장속도는 19세기 말 이후 훨씬 더 빨라졌다.

러시아 경제가 비교적 좋은 실적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앨런은 대외환경이 유리하게 변했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러시아는 산업화가 개시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농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농업경제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국제무역이 발전하면서 러시아 농산물 시장도 국제시장에 통합되었다. 그 결과 세계 각국 간 곡물 가격 차이가 축소되어 서유럽에서는 가격이 떨어지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가격이 올라갔다. 곡물 가격이 상승하자 농업생산 인센티브가 커져 경작지가 확대되고 농업투자가 늘어났으며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동시에 차르(러시아 황제)가 적극적인 산업진흥 정책을 펴서 제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철도 건설 붐이 불었다. 농촌소득이 중대되면서 러시아 내수시장도 커졌다. 앨런은 20세기 전반기에는 이런 식의 경제발전이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하락해 곡물 수출에 의존하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들은 경제난을 겪었는데 러시아도 비슷한 처지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철도 건설도 웬만큼 완료되어 더 이상 성장 엔진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1930년대에는 세계 대공황이 일어났고 국제무역이 위축되었다. 따라서 20세기 후반의 일본이나 한국 같은 수출지향 산업화도 어려웠을 것이다. 앨런은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자본주의 러시아가 계속되었다면 경제 실적이 신통치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혁명 이전의 경제발전은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부족한 불평등 발전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민과 노동자가 여전히 가난했으며, 이들이 품은 불만으로 계급 갈등이 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러시아 혁명은 필연적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 발전 경로를 상상해 보는 이런 식의 작업은 의미는 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자본주의 발전을 계속했다면, 혁명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성장 요인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지하자원 개발 붐이라든가 외국인 투자 등에 의해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공산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의 통치를 가정할 경우, 어떤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그들이 어떤 제도를 정착시키고 어떤 정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세계경제 여건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앨런처럼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 가능성이 낮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처럼 러시아 자본주의의 미래가 밝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장기적인 성장실적은 사회주의 소련이나 자본주의 러시아가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자본주의가 별반 더 낫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자본주의라고 다 같은 자본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좋은 실적을 보이려면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제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는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린다.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상태에 있었던 러시아가 건강한 자본주의 제도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설령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다 해도 20세기 말에 러시아가 서유럽 수준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이번시간에는 팜 투 팩토리를 리뷰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