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도서 리뷰] 인종적 이질성과 소득 재분배

인종적 이질성과 소득 재분배을 읽고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리뷰] 인종적 이질성과 소득 재분배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왜 미국에서는 좌파의 힘이 약한가

여러 각도에서 설명했는데, 그 중 그들이 가장 중시하는 요인은 인종적 이질성이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회귀분석으로 소득 재분배를 결정하는 여러 설명변수의 설명력을 측정해 보면, 인종적 이질성이 미국과 유럽 소득 재분배 제도 격차의 절반 이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난다. 인종 문제는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직접적으로, 또 정치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에서 소득 재분배 제도의 도입과 확대를 저해한 주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설명은 폴 크루그먼이 몇 년 전 낸 책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주장한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인종문제가 소득 재분배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라는 것은 계량경제학적 분석에서 쉽게 드러난다. 국가간 회귀분석을 해보면, 인종적․종족적 이질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소득 재분배에 대한 지지가 약한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소수 인종․종족이 저소득층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흑백 인종갈등이 심한 미국에서 흑인은 대체로 저소득층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주마다 사회복지제도에 차이

각 주별 흑인인구 비율과 사회복지제도 사이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흑인이 많은 주가 사회복지에 더 인색한 것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에서도 이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인종문제에 대한 태도와 소득 재분배에 대한 지지 여부 사이에서 밀접한 관계가 나타났다. 또,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가치관에 따라 투표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다른 인종의 복지 수혜자(즉 빈민)가 가까이 살 경우에는 소득 재분배에 대한 지지도가 낮게 나타나는 반면, 같은 인종의 복지 수혜자가 가까이 살 경우에는 소득 재분배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즉 미국의 백인들은 다른 가난한 백인이 복지 혜택 받는 것은 오케이지만, 가난한 흑인들이 복지 혜택 받는 것은 보기 싫어하더라는 것이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 정치사를 살펴보면, 중요한 고비마다 인종문제가 정치의 흐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계급정치가 지배적이었던 데 반해, 미국에서는 인종정치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또는 미국의 계급정치는 인종정치 때문에 왜곡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 최초로 계급정치가 뚜렷이 부상

19세기 말 “인민당”(People's Party) 운동을 통해서였다. 남북전쟁 후 재정이 모자랐던 연방정부가 통화를 증발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가난한 채무자였던 미국의 농민들은 인플레이션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됨을 깨달았다. 이들 농민 세력은 1890년대에 인민당을 만들어 인플레 정책과 소득 재분배 정책을 요구했다. 뒤이어 20세기 초에는 지지기반을 노동계급으로까지 넓힌 “미국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도 출범했다. 하지만 이들 좌파 정치세력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결국 사라져 갔다. 이들이 실패한 것은 미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좌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책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농민이나 가난한 노동자였으므로, 좌파 세력이 정치적 파워를 갖는 것은 흑인에게 유리한 일이었다. 보수 정치인들은 미국의 백인들, 특히 남부 지방 백인들이 흑인에게 갖고 있는 증오심을 이용해 좌파 세력을 공격함으로써 싸움의 지반을 계급정치에서 인종정치로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미국(의 남부지방)에서는 흔히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라고 불리는 각종 법률에 의해 19세기 말 이후 흑백 인종분리가 제도화되었다. 일종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미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셈이다. 20세기 초에는 씨오도어 루즈벨트나 우드로우 윌슨 같은 “진보파”(the Progressives) 정치세력이 집권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인민당이나 사회당보다 훨씬 온건하고 덜 빈민 친화적이었으며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인종주의자들과 제휴하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에는 진보파를 계승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뉴딜” 세력이 집권해서 종전보다 훨씬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소득 재분배와 사회복지를 향한 이들의 개혁 노력은 보수적인 의회와 대법원에 의해 무디어져서 유럽에 비해 훨씬 제한적인 사회복지제도를 성립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뉴딜 개혁에 대한 정치적 반대에서도 역시 미국 남부의 인종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미국 남부의 민주당 출신 의원들은 인종적 증오심 때문에 같은 민주당 대통령인 루즈벨트의 사회개혁에 반대했던 것이다.

대공황과 뉴딜

상당히 진보화되어 있던 미국정부 및 정치권은 1960년대 이후 점차 보수화되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인종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이념은 반공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작은 정부 사상)의 연합인데, 이들 세 가지 이념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종주의가 보편적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이 명백했기 때문에, 20세기 중후반에 흑인 민권운동이 힘을 얻어 법률적,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를 철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제는 보수주의 정치가들도 내놓고 인종차별주의를 과시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는 인종차별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대신에 연방주의(연방정부의 지방정부 간섭) 반대와 지방자치 강화, 작은 정부에 대한 지지 등 다른 아이템을 내세워 흑인에 유리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건이나 부시 같은 보수파 정치가들이 집권하는 데에도 인종문제가 심한 미국 남부지방의 정치적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 미국과 비교

유럽의 동질성에 대해서도 역사적 설명을 제시한다. 유럽의 동질성도 혈연적, 생래적 이유로 자연스럽게 확보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중세시대까지 유럽은 대단히 분열된 사회였고 각국의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이 동족이라는 의식을 별로 갖지 못하고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정치적 통일이 진행되어 “민족국가”(nation state)가 성립했고 그 결과 민족적 동질성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각국 정부(대개는 절대왕정)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해 각별한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이 공적인 대중교육제도의 수립이다. 대중교육 또는 공교육이 성립함으로써 학교에서 동일한 민족언어를 교육해 지방언어를 없앴고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했으며 민족문화를 장려한 것이다. 민족주의 의식을 통한 동질성의 확보도 역시 정치가들의 책략을 반영한 정치적 발명품이라는 이야기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의 인종문제에 비견할 만한 현상으로 유럽의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기에 유럽 각국에서는 반유대주의가 창궐했고, 결국에는 독일 나치정권에 의한 홀로코스트라는 대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왜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생겼을까? 그 역사적 연원은 대단히 오래된 것이지만,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19세기의 정치 정세를 반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우파와 좌파의 대립구도

오늘날과 달라서 군주제 및 카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우파세력 대 공화주의 및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좌파세력 간의 대립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카톨릭 교회와 봉건영주 및 왕들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었고, 신흥 부르주아지가 장악한 도시에서는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좌파를 지지했고 스스로 좌파의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럽의 우파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했고 사람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퍼뜨림으로써 정치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자 했다. 독일의 나치당은 이런 책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해 집권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소득 재분배에 대한 반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특별히 빈민층을 구성하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도 집권한 후 소득 재분배 제도를 유지하였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정치 상황의 전개에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과 소득 재분배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미국과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이런 생각을 가리켜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그들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는 현실적 근거를 반영해 자연스럽게 성립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해내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사람들 머리 속에 “주입”(indoctrination)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세뇌 공작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사람 중에는 “가난한 사람도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당연히 소득 재분배 제도에 찬성하지 않게 된다. 반면, 유럽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운이 없어서(즉, 부모를 잘못 만났거나 병에 걸렸거나 등등) 가난한 것이며, 이들은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소득 재분배 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현실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미국과 유럽의 소득 이동성에는 큰 차이가 없고,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렵다. 또,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으며,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과 유럽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이토록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것일까?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우파 정치가들, 그리고 유럽의 이데올로기는 좌파 정치가들에 의한 이념적 조작의 결과라고 말한다. 즉 이데올로기는 정치투쟁의 결과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은 장기간의 정치투쟁 과정에서 정치가들이 어떤 방법으로 이런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정착시켰는가에 대해 역사적 설명을 상세하게 제시한다.

미국에서 자수성가의 이데올로기

즉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중후반에 “휘그당”(공화당의 전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선전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휘그당은 북부의 부유한 상공업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당으로서 보호무역정책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었고 소득 재분배에 반대했으며, 자기들을 정치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부자들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적극 선전했다. 반면 민주당은 자유무역을 지지했고 휘그당이나 공화당보다는 소득 재분배에 더 너그러웠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옛날의 미국과 반대로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장하준 교수가 좌파로 통하고 있다.) 19세기 말에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정치적으로 왜곡한 “사회 다윈주의”가 약육강식이 자연적 진리라는 우파 이데올로기의 대변자가 되었고, 대공황과 뉴딜 이후에는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시장만능주의 = 작은 정부)가 반공주의 및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주된 우파 이념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정착

단지 정치적 선전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유럽에서 민족주의 이념이 정착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중교육제도가 결정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의 대중교육제도는 유럽에 비해 훨씬 더 분권화되어 있어서 학교 설립과 운영에서 지방 유지들, 즉 부자들이 훨씬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들 부자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 내용과 교사들의 성향을 세심하게 감시하고 통제해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이념을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주입하였다. 앞에서 강조한 인종차별주의적인 정서와 생각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도 학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공교육에서 흑백분리를 철폐하는 문제가 나중의 흑인 민권운동에서 그토록 첨예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소득 재분배를 옹호하는 좌파 정치세력이 좌파 이데올로기를 체계적으로 선전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전근대적 신분제도의 자취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계급사회”라는 이미지, 즉 잘 살고 못 사는 게 어떤 집안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이 쉽게 사람들 머릿속에 심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좌파 정치세력에 의한 정치적 선전과 이들이 추진한 공교육 개혁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좌파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의 연대를 강조하고 자신들이 노동계급의 전사라는 이미지를 선전했으며, 집권 시기에 공교육 개혁을 열심히 추진해 교과내용을 바꾸고 교사 집단을 개편했다. 또, 유럽에서는 좌파 성향을 갖는 교사 노동조합이 학교에서 좌파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데 열심이었다.

사회제도와 정치-이념 투쟁

미국과 유럽 사회복지제도가 왜 그렇게 다른가에 대해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대단히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이들의 설명은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경제학자들 및 정치학자들의 연구를 잘 종합하고 있어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알레지나와 글레이저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점은 사회제도는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투쟁과 이념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지리적 조건이나 앞선 시대의 역사 같은 외생변수가 사회제도의 큰 줄기를 결정하는 기본 배경이 되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의 역량과 책략에 따라 사회제도의 내용이 상당히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또,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 사회제도의 성격을 분석할 때 인종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고, 이 문제에서도 역시 정치인들의 책략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인종문제에는 인간 본성 같은 자연적 배경이 있기는 하다.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하게 생겼고 동질적 문화를 공유하는 동족을 더 좋아하는 본능적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본능적 성향이 반드시 인종차별주의나 인종적 혐오감을 낳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보수파 정치인들이 전략적으로 인종문제를 활용한 결과로 인종갈등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 알레지나와 글레이저의 결론이다. 이 책에서 알레지나와 글레이저는 미국과 유럽의 제도 중 어느 쪽이 좋은가에 대한 평가는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제시하는 설명의 전반적 기조에서는 미국 제도가 갖는 문제점을 더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도 있지만, 그래도 인종문제 때문에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극단적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미국사회의 실상에 대해 매스미디어나 이런 저런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 또는 흑인들이 가난하다는 것 자체보다도, 인종차별이 흑인들을 좌절시켜 흑인사회를 도덕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인종갈등을 완화하고 사회통합을 지향해서 흑인들의 경제적 처지와 도덕적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알레지나와 글레이저가 계속해서 정치 및 이념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인종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별한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진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오바마는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진보적 사회개혁에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쩌면 오바마의 개인적 잘못이라기보다는 아직 미국 진보세력의 정치 역량이 성숙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고, 몇 년이 지났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다시 한 번 거대한 사회개혁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인종적 이질성과 소득 재분배의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