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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쿠데타의 정치학를 리뷰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시간에는 쿠데타의 정치학을 책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리뷰] 쿠데타의 정치학를 리뷰하겠습니다.

쿠데타의 정치학

최빈국의 정치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현상은 쿠데타의 빈발이다. 당신이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선거에 져서 권력을 잃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쿠데타로 쫓겨날 가능성은 꽤 높다. 최빈국에서 쿠데타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쿠데타도 일종의 폭력 사태이고 정치적 격변을 야기하므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내전에 비하면 그 부정적 영향의 크기는 훨씬 작다. 콜리어는 내전의 경우엔 너무나 심각한 악영향이 나타나므로, 설령 반군세력이 현 정부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내전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쿠데타는 한 번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또, 때로는 쿠데타의 위험이 현 정권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견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과연 쿠데타는 괜찮은 방법일까? 콜리어는 쿠데타에 대해서도 엄밀한 실증분석을 시도한다. 쿠데타의 발생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분석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결론은 민주주의 체제가 쿠데타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가혹한 정치적 탄압은 쿠데타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특히, 비밀경찰의 감시는 쿠데타의 모의를 어렵게 하는 중요 요인이다. 많은 독재정권에서 정보사찰, 고문, 투옥 같은 무시무시한 탄압이 흔히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쿠데타가 한 번 일어난 나라는 여러 번 쿠데타가 재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콜리어는 쿠데타로 들어선 정권은 정당성이 취약하고 권력기반이 튼튼하지 않아 새로운 쿠데타에 쉽게 무너진다고 말한다. 또, 정권교체로 승진 기회를 얻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새 정권을 지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제까지 검토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쿠데타는 나쁜 정권을 쫓아내기보다는 덜 나쁜 정권을 쫓아낼 가능성이 더 높으며,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자꾸 재발함으로써 사회에 꽤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에서 우리가 기대해 보았던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앞에서 내전의 결정요인으로 판명됐던 다른 요인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종족적 이질성은 어떨까? 여기서는 약간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세계적으로는 종족적 이질성이 쿠데타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만 따로 떼어 분석을 해보면, 종족적 이질성이 심할수록 쿠데타도 더 잘 일어난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아프리카 지역의 종족 간 갈등은 다른 지역의 경우와 뭔가 성격이 다른 것일까? 다음으로, 낮은 소득수준과 낮은 성장률은 내전 위험만이 아니라 쿠데타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원조가 쿠데타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나온 것도 흥미롭다. 콜리어는 정권을 잡으면 원조자금을 사용할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게 쿠데타 모의자들에게는 꽤 큰 매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빈국의 대통령이 쿠데타를 막으려면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군대를 분할해서 서로 연결되지 못하게 하고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디바이드 앤 룰”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나라에 대한 국가안보를 취약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이다. 쿠데타 관련 데이터를 점검해 보면 장기집권하는 지도자는 더 큰 쿠데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임기를 제한하면 쿠데타 위험이 낮아질 거라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몇 년 지나면 어차피 물러날 거니까, 굳이 위험하게 쿠데타를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임기 제한의 약속이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져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최빈국의 대통령에게 매우 골치 아픈 문제는 군대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대개 쿠데타를 실행하는 것은 군부 지도자들이다. 내 부하인 군대가 내게는 가장 위험한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군부 지도자들은 군비지출을 늘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 군사예산을 늘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콜리어의 실증분석에서는 어떤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는 군사비 수준이 쿠데타 위험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쿠데타 위험이 높은 나라에서는 군사예산을 늘려주는 것이 쿠데타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마치 갱들이 보호비 명목으로 삥을 뜯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앞에서 한 이야기랑 종합하면, 한편으로는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군부 지도자들을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돈을 많이 줘가며 달래는 것이 쿠데타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우리는 쿠데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콜리어가 모은 데이터를 종합하면, 쿠데타가 더 나은 정권을 성립시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정치체제나 정책을 모두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리어는 쿠데타를 단순히 기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쿠데타 외에 독재정권을 바꿀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민중봉기와 반란밖에 없다. 반란은 너무 큰 비용을 초래하므로 안된다. 그리고 최빈국에서는 민중봉기가 일어나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민중봉기의 성공 가능성은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더 높다. 그래서 콜리어는 이제까지의 쿠데타는 엉뚱한 표적으로 날아간 미사일이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는 쿠데타라는 미사일이 올바른 표적으로 날아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건설과 민족 형성

이제 콜리어는 최빈국의 정치가 이토록 후진적인 이유에 대해 역사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최빈국은 국가(state)이긴 하지만 아직 민족(nation)은 아니라는 것이 본질적 문제이다. 쉽게 말해서 최빈국의 국민들은 서로를 동포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콜리어는 이 때문에 최빈국에서는 공공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를 설명하기 위해 콜리어는 인류사적 관점에서 국가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 기원으로 가서 볼 때 국가의 본질은 폭력을 독점한 지배집단이라 할 수 있다. 원시 인류는 작은 무리를 이루며 살았는데, 이들의 생존전략 중 중요한 것은 이웃 무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원시 인류에게 무리들 간의 전쟁은 일상사였다고 할 수 있다. 원시 인류의 삶은 매우 위험하고 극도로 폭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폭력은 규모의 경제라는 특성을 지닌다. 즉 큰 무리가 더 안전하다. 따라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작은 무리들이 연합해 점점 큰 무리를 형성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큰 무리가 형성되려면 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수렵채집 단계에서 벗어나 농경생활을 시작함으로써 큰 무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생산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중에는 육체적으로 강건해서 폭력을 더 잘 구사할 수 있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영리해서 남들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큰 무리 속에서 일종의 폭력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내며 지배집단을 형성하게 된 것이 바로 국가다. 국가를 형성한 폭력집단은 자기 영토 내의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함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지배하면서 독립된 신분 집단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지배와 착취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그 대신 백성들에게 공공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관개시설 건설을 조직한다든가 치안 질서를 유지한다든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공공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국가로부터, 즉 다른 폭력집단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 즉 국방이다. 콜리어의 이런 설명은 경제학자 맨서 올슨의 설명(Mancur Olson, Power and Prosperity, Basic Books, 2000)과 거의 유사한 것 같다. 올슨은 국가의 기원을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유랑형 도적”(roving bandits)보다는 정주형 도적이 훨씬 낫다. 정주형 도적은 장기적 관점에서 착취를 실시하므로 유랑형 도적보다 착취율이 훨씬 낮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 공공재 공급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국가가 없는 상태, 또는 국가 규모가 너무 작은 상태보다는 국가다운 국가가 성립해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콜리어는 오늘의 아프리카 상황을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영국이나 유럽 상황에 비유해 설명한다. 로마제국 말기 영국은 로마제국 군대가 철수하면서 갑자기 국가가 없는 상황에 놓였다. 2차 대전 이후 아프리카가 탈식민화한 것처럼 당시 영국도 탈식민화한 셈이다. 그 후 영국의 상황은 수많은 미니 국가의 난립과 이들 간의 끝없는 내전으로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는데, 이런 상황이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더 넓게 보면, 영국뿐 아니라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 전체의 상황도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미니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근대 민족국가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미니 국가들이 연합해서 더 큰 국가로 뭉쳐 나갔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공통의 적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고, 여기서 공통의 민족 아이덴티티라는 신화가 생겨났다. 즉 실제로는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을 공통의 기원과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국가와 전쟁을 하려면 전비를 조달해야 했다. 이를 위해 국민들, 특히 부자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여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는 부자 국민들(근대 자본주의가 싹트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흥 부르주아지)에게 책무성(accountability)을 갖게 되었다. 부자 국민들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거나 세력을 위축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네덜란드와 합스부르크 황실의 싸움에서 네덜란드가 승리하고 합스부르크 황실의 세력이 퇴조한 것이 좋은 예이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무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부자 국민에게서 일반 국민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전근대적 신분제가 무너지고 일반 국민이 자유민이 되었으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으로 일반 국민의 파워가 현저하게 신장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으로서, 이로써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의 국가 또는 정부는 옛날과는 달리 착취와 지배보다는 공공재의 공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정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렇게 근대 국가의 표준 형태인 민족국가와 민주정부는 로마제국 이후의 유럽이 오랜 세월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힘들게 창조해낸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전근대적이거나 원시적 상태에 있다가 서방 강대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 후 독립한 지 반 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프리카가 아직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혼란스런 상태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아프리카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서방 강대국들이 자의적인 줄긋기를 해서 국가를 획정했고 이것이 종족 간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이 오늘날 아프리카 정치의 후진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콜리어는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탈식민화 당시 아프리카에는 약 2천개의 종족이 있었다. 이들에게 맞춰 2천개의 국가를 독립시켜야 했는가? 그렇게 했다면 원시사회와 같은 극도의 혼란과 종족 간 전쟁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는 약 50여개의 국가로 독립되었는데, 어찌 보면 이것도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해야 한다. 국가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야만 국방을 비롯해 공공재의 공급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자체가 너무 많은 종족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이들이 적정한 숫자의 민족으로 통합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 과정에서 어떻게 국가를 획정했다 하더라도 이들 국가 내에서 종족적 이질성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문제는 독립 후에 종족적 이질성을 극복해서 이들을 민족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탄자니아 같은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그런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고, 민족 아이덴티티 대신에 종족적 충성심만 더 강화되는 결과가 나타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콜리어는 로마제국 이후의 유럽과 비교할 때, 아프리카는 상황이 더 낫다고 평가한다. 오늘의 아프리카는 국제사회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빈발하긴 했지만, 국가 간 전쟁은 비교적 드문 편이었고 다른 국가에게 병합될 위험은 매우 낮다. 또, 아프리카는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로마제국 이후의 유럽에 비해 국민들에 대한 과세 필요성이 훨씬 작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세율이 낮은 만큼 국가가 국민에 대해 지는 책무성도 역시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최빈국 정부는 아직 민주정부가 아니고, 지도자들은 대개 부패한 독재자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정부의 긍정적 순기능을 수행하는 것보다는 자기들이 권력을 갖고 있는 동안 국민들에게서 뭔가를 많이 뜯어내는 데 더 몰두한다. 부패한 권력자들은 국민들에게서 얼마나 많이 뜯어낼 것인가를 놓고 일종의 선택 문제에 직면한다. 세금을 많이 매기면 사람들이 비공식 부문으로 도피한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비공식 경제의 비중이 높은 경향이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세금을 매기기 어려울 때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 경우 정부는 화폐주조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서 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이를 “인플레이션 조세”라고 부르는데, 이는 국민들에게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뜯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계속 하면 국민들이 국내통화 보유를 기피하고 외화를 사용하는 경향을 낳게 된다. 그 경우엔 화폐주조이익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또, 세금을 많이 뜯어낼 경우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거나, 그 기대수준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원성이 커지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기타 최빈국의 부패한 권력자들은 비교적 세금을 적게 거두고, 그 대신 공공재도 제대로 공급 안하는 방법을 택하기가 쉽다. 이 때문에 최빈국의 공공재, 공공 서비스 공급 상태가 엉망이고 사회질서는 매우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최빈국의 정치와 정부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에 중세 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적인 국가간 전쟁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민족국가 형성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최근 우간다나 르완다처럼 통치상황이 크게 개선된 몇몇 나라를 보면, 이들 나라의 신흥 집권자들이 부국강병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게 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강력한 국력, 강력한 군사력을 갖길 원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먼저 경제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행동양식은 중세 유럽의 절대군주들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중세 유럽식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 군비 경쟁의 비용이나 전쟁이 주는 피해는 너무나 크다. 천연자원으로 군사비를 조달할 수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군사력 구축 과정이 근대적인 민족국가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점도 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중세 유럽과는 다른 방법, 다른 과정을 거쳐 민족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개입방안

콜리어는 최빈국이 가급적 빨리, 그리고 더 나은 과정을 거쳐 민족 형성과 민주화를 이루게 하려면, 국제사회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제사회의 개입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나 진정한 변화를 이루려면, 그 기본적인 주체와 동력은 그 사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콜리어는 국제적 개입이 초기 단계에서 첫 방아쇠를 당기는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국제사회의 개입은 개념적으로 보면 공공재의 국제적 공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빈국에 필요한 공공재는 (국민에 대한) 책무성(accountability)과 안보(security)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책무성의 범주에는 공공 인프라스트럭처나 교육․보건 같은 공공 서비스가 포함되고, 안보의 범주에는 내전의 방지, 외국과의 전쟁의 억지가 포함될 것이다. 최빈국들은 내부적으로 너무 분열되어 있어서, 그리고 대개의 경우 국가 규모가 너무 작아서 책무성과 안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콜리어는 최빈국들 스스로 국제적으로 협력함으로써 공공재의 공급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유럽연합 같은 국제협력을 아프리카 나라들이 모색해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그런 방안이 실질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한다. 최빈국의 정권들은 정당성을 결여한 정권들로서 공공재 공급을 위해 별로 노력하지 않는다. 또, 그들은 국제협력을 추진함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되는 점을 싫어한다. 사실, 실현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이상적인 방안을 찾는다면, 최빈국들을 적당한 수의 대규모 국가로 통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국가들을 통합해 더 큰 국가를 형성하면 안보와 같은 공공재의 공급능력은 현저히 커진다. 단, 국가 통합 후 종족적 이질성이 더 심화될 우려가 있는데, 이 문제는 종족구성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묶는 방식을 택하면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콜리어는 현재 50여개 국가로 구성되어 있는 아프리카를 7개 국가로 재구성하면 분쟁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 물론, 그런 국가 통합 방안이 예상가능한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 통합은 권좌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이에 반대할 것이다. 결국, 최빈국들의 국가통합이나 국제협력이 어렵다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국제사회, 즉 주요 선진국의 개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즉 주요 선진국이 최빈국들에 어떤 룰을 적용해서 책무성과 안보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콜리어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제안 (1)

최빈국 정부로 하여금,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국제적 공약을 수용하게 하자. 최빈국 정부가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국제사회는 충분한 당근을 제공하자. 콜리어는 국제원조는 충분한 당근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뭔가 새로운,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와 결정적으로 관련 있는 것을 당근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는 현 정부를 쿠데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겠다는 국제적 공약이 그런 유용한 당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국제적 공약이 일반화될 경우, 여기에 참가하지 않는 최빈국에서는 잠재적 쿠데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며, 이것이 최빈국 정부로 하여금 협약을 수용하라는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요컨대, 국제사회가 쿠데타 위험을 현 정부의 행동을 개선하기 위한 촉진제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제안 (2)

최빈국의 정부지출에 국제적 룰을 부과하자. 최빈국의 정부재정 중에서 국제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원조를 줄 때 정부지출과 관련한 “이행조건”(conditionality)을 부과함으로써 정부지출의 방향과 집행과정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국제원조에서도 바람직한 정책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 이행조건을 부과해 왔지만, 큰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콜리어는 이행조건 부과 관행을 바꿔서 정부재정과 관련한 좁은 영역에 포커스를 맞춰보자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많은 최빈국이 공무원 집단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행정역량이 너무나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콜리어는 공공사업을 시행할 때 NGO나 기타 지역사회 조직 등 민간부문에 사업을 위임하고 정부는 이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시험해 볼 것을 제안한다.

제안 (3)

최빈국에 국제적 차원의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원조를 줄 때 군비 감축을 조건으로 붙임으로써 최빈국의 전반적인 군비 감축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분쟁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쟁 종료 후” 국가에 대해 일종의 국제적 관리 체제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콜리어는 UN 신탁통치 같은 방식은 실현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보다는 더 느슨한 방식의 관리체제를 만들어보자고 말한다. 국제사회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일부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일부는 경제원조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또, 분쟁 종료 후 새로 들어선 정부에게는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국제적 룰의 수용을 요구하자고 한다. 위험성이 큰 지역에 대해 무기 무역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상 세 가지 제안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제안 (1)이다. 제안 (2)나 제안 (3)은 이미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 실행하고 있는 것을 조금 방향이나 초점을 바꿔서 더 개선해 보자는 정도의 이야기지만, 제안 (1)은 완전히 새로운 방안이기 때문이다. 콜리어 스스로도 자기 책의 핵심 메시지가 바로 제안 (1)이라고 말하고 있다.

콜리어의 제안은 얼마나 현실적일까?

최빈국 정부가 그런 국제적 협약을 수용하려 할까? 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그런 약속을 하려 할까? 내가 보기에 콜리어의 제안은 제한적으로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콜리어 자신의 연구에 비춰 보면, 가장 극악한 독재국가에서는 쿠데타 위험이 높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나라에서는 쿠데타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부과하는 룰을 스스로 지키려 나설 것 같지가 않다. 쿠데타 위험이 높은 나라에서도 현 정부가 그런 협약을 수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최빈국 정부들에게는 국제사회의 룰을 수용할 경우 선거에 져서 정권을 잃을 위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잃을 위험보다 더 높게 느껴지지 않을까? 정권 안보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선진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아주 조그만 나라들은 선진국 군대가 약간만 개입해도 쿠데타를 쉽게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덩치가 좀 큰 나라들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다. 쿠데타 진압을 확실히 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면, 선진국이 신속대응군을 대규모로 편성해 아프리카 현지에 주둔케 하고 수시로 군사훈련도 하고 각국 군부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평소에 경고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군부 사람들은 선진국이 말로만 떠들지 실제로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제안 (2)도 얼마나 타당한지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 과거의 국제원조에서 정책 이행조건이 실패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제 이행조건의 초점을 바꾼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특히 심각한 문제는 콜리어도 지적하듯이 최빈국 정부가 무능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지도자들이 정부지출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공공사업을 제대로 시행하고 싶어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해보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콜리어는 NGO나 지역사회에 일을 맡겨 보자고 하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할지, 그들도 또 다른 부패집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최빈국 중에서 그래도 조금 질서가 잡히고 수준이 조금 더 높은 나라의 경우엔 콜리어의 제안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아주 엉망인 나라들은 잘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희망을 찾아서

콜리어의 제안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국제사회가 최빈국의 정치 상황 개선을 위해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적 취지에는 찬성한다. 국제사회의 다양한 개입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고 앞으로도 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당장에는 어설픈 개입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생각되는 일들도 없지는 않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치열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난한 나라들이 자꾸 국제사회와 교류하게 해야, “평화와 민주주의”의 사상과 제도를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대한 국제사회의 꾸준한 비판과 개입 노력은 결국 인종차별의 철폐와 흑인정권의 성립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언젠가는 남아공과 같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진보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콜리어의 제안도 앞으로 국제사회 내에서 계속 검토하고 연구해서 더 현실적이고 더 좋은 방안을 찾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국제적 개입은 콜리어가 말하는 대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역사의 진전을 위한 기본적 동력은 역시 각국의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콜리어의 이번 책은 국제적 개입 방안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비롯한 최빈국들 내부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섬세한 분석이 빠져 있어 아쉽다. 하지만 콜리어가 최빈국 정치 문제의 역사적 본질과 오늘의 현실적 상황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크게 상찬할 만하다. 그의 연구는 언젠가 최빈국 내부에서 새로운 개혁세력, 새로운 지식인 집단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쿠데타의 정치학에 대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