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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Wars, Guns, and Votes - 폴 콜리어 교수

오늘은 Wars, Guns, and Votes에 대한 책리뷰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Wars, Guns, and Votes - 폴 콜리어 교수

몇 년 전 최빈국의 경제 문제를 다룬 역작

<The Bottom Billion>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던 폴 콜리어 교수(옥스퍼드 대학 경제학과)가 이번에는 최빈국의 정치 문제를 다룬 책을 썼다. 지난번 책과 마찬가지로 이번 책도 자신이 수행한 여러 편의 실증분석 연구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서 쉽게 풀어 쓴 건데, 역시나 무척 흥미롭고, 새롭고, 심오한 통찰력으로 가득 찬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최빈국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보다 더 좁은 범주를 가리킨다.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들을 따로 분류할 수 있고,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대략 10억명 정도 된다. 그래서 콜리어는 이런 최빈국을 가리켜 "밑바닥 10억"(bottom billion)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최빈국의 정치 문제

우리가 대강 알고 있다시피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나라들은 거의 대부분 서방 선진국의 식민지였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는데, 독립 이후 정치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의 지배, 군사 쿠데타의 빈발, 내전, 정치 폭력 등으로 얼룩져 있다. 이렇게 정치가 엉망이었기에 경제도 역시 극도의 후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왜 가난한 나라들의 정치는 이토록 후진적일까?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후 여러 가지 개선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였던 내전이 줄어들었고,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도 많아져 이제는 대다수 나라에서 선거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콜리어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선거가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나라에서 선거를 전후로 심각한 정치 폭력이 나타났고, 선거로 집권한 정권은 여전히 독재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이런 후진국의 어두운 정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콜리어는 대다수 후진국이 아직 국가 형성(state building)을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란 근대 이후의 표준적 국가 형태인 민족국가(nation state)를 말한다. 먼저 국민들이 서로를 동족과 동포로 여기는 민족이 되어야 하고, 그런 정신적 기반 위에 정부가 들어서야 민족국가가 성립하며, 민족국가의 토대가 튼튼해야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후진국은 이질적인 사회, 즉 서로 다른 종족과 서로 다른 계층이 대립하는 분열된 사회로 남아 있다. 이렇게 분열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고 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인류 역사 전체를 보면 분쟁과 폭력, 그리고 독재는 예외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상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사상과 제도는 근대에 와서야 싹이 텄고 오늘의 수준으로 정착하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 오늘의 후진국들에게도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일까? 콜리어는 후진국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아마도 그럴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후진국의 정치와 분쟁은 인류 평화 전체에 대해 너무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콜리어는 선진국과 국제사회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개입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현실적인 개입 방안을 찾는 것이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선거 민주주의의 환상

지난 10년 내지 20년 사이에 대다수 최빈국의 독재정권은 선거를 실시하라는 선진국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선거를 실시해 보니 민주주의가 진전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 폭력이 더 증폭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콜리어가 선거 민주주의와 정치 폭력 사이의 관계를 계량분석으로 연구해 본 결과, 1인당 소득 2,700 달러 이상의 중진국,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치 폭력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으나, 그 이하의 후진국에서는 오히려 폭력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콜리어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데모크레이지”(democrazy)라고 부른다. 이런 데모크레이지 현상은 왜 나타나는가? 최빈국은 그동안 계속 독재정권이 지배해 왔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실시하면 선거 자체가 그야말로 “사활을 건 투쟁”이 되어 버린다. 선진국에서는 선거에 져도 야당으로서 계속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최빈국에서는 선거에 지면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 있으며, 잘못하면 그야말로 끝장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집권세력도 반대세력도 필사적으로 선거에서 이기려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종 불법, 탈법,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콜리어는 선거가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구조적 요인들을 몇 가지 지적한다. 첫째, 최빈국에는 언론이 발달해 있지 않아서 정보가 잘 유통되지 않는다. 둘째, 종족적 이질성이 있는 나라에서는 종족 구성이 투표 행위를 왜곡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한국에서 지역별로 투표 성향이 갈리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최빈국에서는 더 심각한 왜곡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 최빈국의 독재자는 흔히 경제에 과도한 통제를 가해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주려 한다. 그래야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부패가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대개 부패한 사람들이기 마련이다. 또 부패한 사람들일수록 선거에 이김으로써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 이런 상황을 더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콜리어는 당신이 최빈국의 독재자라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질문하고, 가능한 여러 개의 옵션을 하나하나 검토한다.

첫째, 선정을 베푸는 방법.

하지만 독재자는 선정을 베푸는 방법을 모르며, 안다 하더라도 공무원 집단의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또, 개혁은 부패한 엘리트 집단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독재자가 섣불리 개혁을 시도하다가는 쫓겨날 수도 있다.

둘째, 거짓 선전을 통해 이기는 방법.

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방법이 아니다. 아무리 당신이 잘났다고 선전해도, 백성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그리고 그런 거짓 선전을 너무 오래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곧이들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내의 어떤 소수집단이나 외국을 속죄양으로 만드는 방법.

그러니까 당신네 나라가 어려운 것은 당신네 나라의 어떤 집단(흔히 소수 종족), 아니면 당신네 나라를 적대시하는 어떤 외국 때문이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이른바 “증오의 정치”다. 이 방법은 흔히 유용하게 쓰이지만,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유효하다. 이것만으로 당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넷째, 유권자들을 매수하는 방법.

이 방법은 꽤 쓸 만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다섯째,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방법.

특히, 독재자가 아이덴티티 폴리틱스(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을 정치기반으로 삼는 방법)를 구사할 경우에는 반대파들을 쉽게 식별할 수 있으므로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방법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반대파들도 역시 폭력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내전이나 정치폭력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섯째, 미리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

선거에서 당신을 상대할 유력한 정적이 있다면 미리 뭔가 구실을 만들어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 방법도 유용하지만, 제거된 정적 외에 새로운 정적이 언제든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충분하다.

일곱째, 개표를 조작하는 방법.

이 방법도 역시 유용하지만, 이를 너무 노골적으로 사용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이런 저런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빈국의 독재자는 이런 여러 방법 중 몇 가지를 혼합해서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실제로 선거에서 이기는 경향이 있다. 콜리어가 조사해 보니, 현 정권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선진국에서는 45%밖에 안 되지만 최빈국에서는 74%나 되며, 최빈국 중에서 더 심한 독재정권(“polity score”가 마이너스인 나라)의 경우에는 88%나 된다고 한다. 콜리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인 나이지리아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제로 어떤 전략이 사용되었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앞에서 본 일곱 가지 옵션 중에서 선거판에서 직접, 그리고 가장 흔하게 쓸 수 있는 방법으로는 유권자 매수, 위협(= 폭력), 개표 조작의 세 가지가 있는데, 나이지리아의 선거에서는 이 세 가지 방법이 모두 사용되었음을 입증하는 통계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콜리어의 연구팀이 특히 중시한 것은 위협이었는데, 위협이 있었음을 증명한 연구방법이 재미있다. 콜리어는 국제 NGO인 Action Aid와 함께 일부 지역을 랜덤하게 선택해서 위협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확실히 다른 투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매수와 개표 조작의 실태는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

재미있는 것은 매수와 개표 조작은 상호보완적인 전략이고, 여당이 사용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권자 위협은 매수나 개표 조작이 심하지 않았던 지역에서 더 심하게 나타났다. 즉 유권자 위협은 야당이 더 열심히 사용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선거 폭력은 (적어도 나이지리아의 선거에서는) 테러리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약자의 전략이었다. 불법, 탈법이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이기려 하다 보니 반대파도 폭력에 호소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요컨대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직한 자는 패할 수밖에 없으며, 선거판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투쟁이라는 결론이다. 선거와 정책 사이의 관계는 어땠을까? 최빈국에서 선거가 활발히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는데, 그 후로 최빈국의 정책도 과거에 비해 꽤 개선되는 추세가 나타났다. 그럼, 선거의 도입이 정책 개혁을 촉진한 것인가? 하지만 어떤 제3의 요인이 있어 선거와 개혁 양쪽에 모두 영향을 준다면, 선거와 개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콜리어가 먼저 발견한 것은 정책 개혁의 타이밍이 뚜렷한 역 U자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정책 개혁의 가능성은 선거가 끝난 후부터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린다. 왜 그럴까? 아마도, 선거 직후 집권한 정권은 아직 개혁을 추진할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선거에 대비하느라 개혁을 추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개혁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선거 직전에는 개혁을 해보아야 점수를 따기 어렵다. 이는 선거가 개혁의 촉진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물일 수도 있다는 시사점을 갖는다. 콜리어는 선거와 정책 개혁 사이의 관계를 더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유명한 Polity IV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국가간 회귀분석을 실시해 보았다. 그 결과는 선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여부는 각국의 구조적, 정치제도적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인구가 많고 종족적 동질성이 높은 나라, 정치체제가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나라에서는 선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인구가 작고 종족적으로 분열된 나라에서는 선거가 개혁을 촉진하기보다는 지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부분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독재자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대부분 나쁜 방법들이다. 그리고 그런 나쁜 성공전략은 모두 평상시에 부패하고 무능한 통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지난 10~20년 사이에 최빈국의 정책이 다소 개선된 이유는 무엇일까? 콜리어는 두 가지 가설을 제기한다. 하나는 학습효과다. 과거의 극단적으로 나쁜 정책이 너무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극단적인 정책(예를 들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통화증발)은 회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가 최빈국에게 원조를 주면서 정책 개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콜리어는 이 중 첫 번째 가설이 더 설득력 있고 더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최빈국에서 선거의 실시를 중시하는 국제사회의 기존 전략은 오류라는 것이다. 최빈국에서 선거 민주주의는 기대와 달리 좋은 정부, 좋은 정책, 그리고 평화 정착의 효과가 없었다.

종족 정치의 폐해

흔히 최빈국은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다종족 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 자기 종족에 충성한다. 왜 사람들은 강한 종족적 충성심을 갖는 것일까? 그 기원은 농촌 공동체 사회의 보험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가난한 전근대 사회의 삶은 위험하다. 당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공동체가 당신을 도와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가족, 씨족, 종족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갖게 된다. 농촌 공동체는 보험이 당면하는 두 가지 보편적 문제, 즉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공동체의 삶 속에서 당신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체로의 귀속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역선택의 문제도 없다. 문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종족적 충성심이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근대 국가에서 사회의 갈등을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종족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의 공동 자원을 자기 종족에 유리하게, 즉 다른 종족에 불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 경우 피해를 입은 종족과 지배 종족 간에 적대적 갈등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런 종족 간 갈등은 선거 정치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까? 한 가지 가능한 사전적 추론은 선진국 정치의 중도 수렴 경향이 다종족 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결 민주주의에서는 51%만 얻으면 되니까 중도적 유권자가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의 정치지형을 보면 극단적 경향보다는 중도 수렴 경향이 더 우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종족 국가에서도 극단적으로 자기 종족만 위하는 정책보다는 타 종족과 유리한 선거연합을 형성하기 위한 중도적 정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콜리어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본 대로 후진국의 정치에서는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기 때문에 이런 희망사항이 잘 실현될 것 같지가 않다. 이와 관련해 콜리어는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베냉 출신의 한 경제학자가 자기 조국의 선거를 연구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베냉의 정치인들을 설득해서(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 무척 궁금), 그들에게 랜덤하게 서로 다른 선거 캠페인을 배정했다. 하나는 나라 전체를 위해 좋은 정책(아마도 중도적인 정책?)을 펴겠다는 캠페인, 다른 하나는 자기 종족에 편향적인 캠페인이었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보니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훨씬 유효한 선거전략이었다. 다른 정파와의 연합을 형성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중도적 지도자보다는 확고한 종족적 기반을 가진 지도자들이 더 유리하다고 한다. 종족적 이질성이 중도 수렴보다는 극단적 정치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추론하기는 어려운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종족적 충성심이 강한 사회에서는 일단 자기 종족에게 인정을 받아야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 아닐까?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흔히 지역 감정에 호소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다음으로, 콜리어는 종족적 이질성이 공공 서비스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 사이의 상호 신뢰가 약하고 사람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족을 위해 쓰일지도 모를 돈을 내기 싫은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감시하기도 어려우니 더더욱 이런 성향이 심해진다.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은 종족적 이질성이 공공 서비스를 악화시키는 대신, 사경제 활동(private economic activity)을 촉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에 대한 콜리어의 설명은 그렇게 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질성은 민간 경제단위가 이용할 수 있는 스킬과 지식의 범위를 넓혀주며, 이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사경제활동에서는 여러 종족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다는 뜻일까?

 

아무튼 콜리어는 국가간 회귀분석을 해보면, 확실히 이질성이 사경제 활동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시에, 콜리어는 이런 긍정적 효과는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의 스킬과 지식이 구비되어 있어야 이질성의 장점도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미국이 유럽보다 사경제 활동이 더 활발한 것은 미국의 이질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또, 그는 앞으로 유럽의 이질성이 높아짐에 따라 유럽도 사경제 활동이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빈국에서는 이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서, 아까 이야기한 공공 서비스에 미치는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콜리어는 또 다른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질적인 사회에서 종족 간 협력을 통해 공공정책을 펴기가 어렵다면, 대신에 일종의 개발독재 같은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해법은 실제로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질적인 사회에서는 좋은 독재자가 아니라 나쁜 독재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대로 종족적 충성심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에, 다종족 국가에서 독재자는 흔히 자기 종족을 권력 기반으로 삼기 마련이고, 그런 한에서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지지층만을 위하는 부패한 지도자가 되기 쉽다. 콜리어는 이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해명한다. 그는 최빈국 경제를 파탄시킨 나쁜 정책들을 식별한 다음, 어떤 경우, 어떤 나라에서 그런 정책이 나타났는가를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는 종족적 이질성과 정치적 독재가 결합된 경우가 최악이라는 것이었다. 이질성 그 자체나 독재 그 자체는 뚜렷한 원인으로 식별되지 않았고, 두 가지가 결합되었을 때가 나쁜 정책을 초래한 원인으로 식별된 것이다. 즉 종족적 이질성을 가진 저소득 국가에게 독재체제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결론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독재체제의 결과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과거의 한국이나 오늘의 중국 같은 성공적인 결과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처럼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많다. 경제학자 팀 베슬리는 왜 아프리카에서는 독재가 실패했는가를 연구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독재정권의 권력기반인 지배집단의 특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배집단이 실패한 독재자를 내쫓고 다른 사람을 통치자로 세울 수 있다면, 독재체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아프리카처럼 종족 정치가 지배하는 경우 독재자의 교체 시도는 그가 근거한 종족집단 자체의 권력 상실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지배집단이 섣불리 독재자를 교체하려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한편, 베슬리는 마르크스주의 같은 강력한 이데올로기도 독재체제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 부분도 좀 설명이 불명확한데,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독재체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독재체제가 좋은 정책을 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는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명령경제를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구소련,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결국 모두 붕괴한 것 아닌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공산당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인 체제개혁을 수행했는데, 아마도 베슬리는 이런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베트남 공산당의 성공적인 개혁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가 약화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더 깨끗하게 이해하려면 뭔가 다른 요소를 더 추가해서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대목에서 콜리어는 이질적인 최빈국에게는 이질성을 극복하게 해줄 공통의 강력한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공통의 아이덴티티는 바로 민족 아이덴티티(national identity)다. 중국이나 베트남 공산당의 성공적 통치도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민족 아이덴티티의 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민족 아이덴티티는 그냥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건설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탄자니아의 니에레레(Nyerere)는 민족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려 노력한 보기 드문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중시한 전략은 언어의 통일, 역사 교육, 지역․종족 간 평등의 추구, 신수도 건설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전략은 얼마나 성공적인 것이었을까

버클리의 경제학자 에드워드 미겔이 탄자니아와 케냐를 비교해 봄으로써 이 점을 연구했다고 한다. 결론은 탄자니아에서는 니에레레의 노력 덕분에 상당한 정도의 민족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공공 서비스의 공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종족 정치가 계속된 케냐에서는 종족 구성이 더 이질적인 지역일수록 공공재의 공급이 부족했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종족 구성이 동질적인 지역이나 이질적인 지역이나 공공재의 공급 상태가 큰 차이가 없었다. 한편, 최근 선거를 치른 케냐에서 종족 정치의 폐해가 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전에 나선 정치인들은 대체로 종족 아이덴티티를 앞세웠고, 이로써 종족 간 갈등과 폭력이 극적으로 증폭되었다. 사람들은 정책에 투표하지 않고 종족 소속에 따라 투표했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의 선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상으로 Wars, Guns, and Votes에 대한 책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