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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리뷰

안녕하세요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리뷰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리뷰

유시민(이하 존칭 생략)이 책을 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요 최고 논객으로 꼽힌다. 또 내는 책마다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출판계의 스타 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스스로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의 객관적 위치는 누가 뭐래도 역시 정치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 유시민이 쓴 민주주의 교과서

이번에 낸 책, 『후불제 민주주의』도 역시 그의 정치활동의 한 부분이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는 날카로운 지성과 명쾌한 문체로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점을 진단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그는 대한민국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시절, 명성이 자자했던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고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는 혈기왕성한 운동권 학생이 아니라 오십 줄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이기에, 이번 책의 논조는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명쾌하고 당당한 논리는 여전한 것 같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제목과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을 적은 책이다. 민주시민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원리, 민주주의의 세계사적 의의, 한국 정치의 역사와 현실 등에 관해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잘 정리해 놓았다. 대학에서 정치학 개론이나 한국정치론, 헌법학 등의 강좌에서 부교재로 이용하면 딱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정치를 진단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교과서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역시 유시민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과연 한국 정치에 대해 어떤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가?

후불제 민주주의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은 후불제 민주주의요 후불제 헌법이라는 것이 유시민의 주장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 국민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서방 선진국에서 발전한 민주주의 사상과 제도를 수입한 데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출범한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종이와 활자로 존재하는 헌법과 각종 제도는 대단히 선진적이었으되, 그 운영은 지극히 파행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당위와 실재가 너무나 크게 불일치했던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도 어느 날 갑자기 선진적 제도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비롯해 오랜 역사 속의 많은 투쟁과 갈등을 거쳐 서서히 쟁취된 것이다. 그런 투쟁과 갈등은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해 치른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유시민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런 비용을 치르지 않은 채 수입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그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1960년 4.19 혁명, 1980년의 5.18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민주대항쟁 같은 사건이 한국 국민이 사후적으로 치른 비용에 해당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는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개인적인 내용은 없다. 나는 유시민이 말하는 후불제 민주주의론의 핵심 포인트는 그 다음의 주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뭐냐 하면 우리가 아직도 그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진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또한 그는 우리가 나서서 그 비용을 적극적으로 치름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를 완성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시민 행동의 필요성

그렇다면 어떤 비용을 더 치러야 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그는 시민 행동의 필요성을 거론한다. 그가 이 책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진 않기 때문에, 과연 시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런 저런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노동운동, 농민운동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년의 촛불시위나 1987년의 6월 항쟁 같은 대규모 군중시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마도 둘 다를 포함하고, 또 그 밖의 여러 가지 활동을 더 포함할 수도 있겠다. 시민 행동의 필요성에 대한 유시민의 주장은 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의 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문명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들은 개인적, 집단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시민 행동을 스스로 조직할 수밖에 없다”(24쪽)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유시민의 주장이 대단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다소 무리한 이야기로 비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현실이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당위와 비교할 때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방 선진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위와 실재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의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4.19나 5.18, 6월 민주항쟁 같은 희생을 우리가 또 다시 치러야 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촛불시위도 4.19나 5.18, 6월 민주항쟁 같은 거대한 역사적 투쟁에 비하면 비교적 사소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가 아닌, 스스로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서방 선진국에서도 작년의 촛불시위 같은 시민 행동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행동은 민주주의의 비용을 후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의제 민주주의만으로 충분히 수용되지 않는 민의(民意)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로 표현된 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해서 경부 대운하 공약을 철회하고(4대강 사업으로 위장한 채 계속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조건도 변경하였다. 이 점을 보아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 민주화 이전의 독재정부와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유시민 같은 진보파가 보기에는 너무 우익적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을 파괴하면서 “문명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치의 보수적 한계와 진보적 측면

그럼에도 나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는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유시민이 이 책 여기저기서 유독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긴 했지만, 그의 논리를 죽 따라가 보면, 한국 정치의 문제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야를 모두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는 지난 수십여 년 간 형성, 발전, 고착되어 버린 지역주의 정치구도다. 그리고 이런 정치구도는 선거제도, 특히 소선구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의 양당 구도라기보다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 대립 구도로 되어 있으며,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작은 지역구에 안주하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시민 같은 참신하고 진보적인 신진 정치인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를 잡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한국 정치의 이런 한계는 한국의 고유한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서방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이 독서일기에서 소개한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에서 지적하는 미국 정치의 문제도 사실 비슷한 것이었다.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전체 국민을 공평하게 대표한다기보다는 이런 저런 기득권 집단을 편향적으로 더 많이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세력을 보면, 좌파보다는 우파가 더 강할 수밖에 없고, 좌파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집권한 후의 정책은 우경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인들이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보수적인 정책만 실시한 것은 아니다. 이 독서일기에서 소개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나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같은 책을 보면, 미국사회보다는 오히려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제도는 미국보다는 한국이 훨씬 더 진보적인 제도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진보적인 제도를 도입, 정착시킨 것이 바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였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역대 장관 중에서 신현확씨를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꼽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현확씨는 1970년대 후반에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내면서 직장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나중에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이를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그래서 그 결과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에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완성되었다. 물론 보수적인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이런 진보적인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장기간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이라는 시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시민 행동의 필요성에 대한 유시민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정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많이 있으면, 그리고 그들이 적절한 방식의 시민 행동을 통해 민의를 표현할 수 있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향하여

유시민은 한국의 기존 정치인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참신한 정치인이다. 그가 자기 같은 중도 좌파 정치인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정치적 도전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나의 정당, 또는 정당 내의 중요 분파를 만들진 못했다 해도, 유시민의 도전은 기성 정치인들을 채찍질하고 감시하여 그들이 민의를 간단히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유효한 자극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정치판을 잠시 떠나 있지만, 지금도 각종 조사에서 그는 가장 유망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에 낸 책 『후불제 민주주의』도 나오자마자 이미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 책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서평들도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나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해 많은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 그가 말한 여러 주장에 대해 논란과 시비가 활발하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비교적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앞에서 유시민의 주장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적 시각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책 전체에 걸쳐 나오는 그의 이야기 대부분은 사실 충분히 지지하고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그가 들려주는 민주주의와 헌법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는 참 좋다. 그는 교과서적인 내용도 뭔가 아주 새롭고 풍부한 시각으로 해석하여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신세대를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데 기여할, 교육적 가치가 큰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진 않지만, 인생의 의미, 종교, 자연과학, 교육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논설이 펼쳐진다. 또 국회의원과 장관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의 의견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다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참고할 만한 좋은 내용이 많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에는 한국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막연히 시민 행동을 조직하자는 이야기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현재의 여러 가지 사회운동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발전방향, 그리고 정치권을 변혁하기 위한 재도전의 비전이 필요할 것 같다. 단시일 내에 큰 진전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장기적으로 꾸준히 노력해 보자는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유시민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비전을 찾기 위해 무척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쉼 없이 노력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