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도서 리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읽고 리뷰해보겠습니다.

[도서 리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자서전이다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로 오랫동안 대학교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가 말해주듯 경제학자보다는 은행가로서 훨씬 큰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해주는 그라민 은행(우리말로 마을 은행이라는 뜻)의 창립자로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액대출 운동”의 선구자이다.

가난이 지속되는 사회적 이유

유누스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학교수가 된 직후인 1970년대 중반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다음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점이었다. 방글라데시는 후진 농업국이어서 취직할 만한 직장은 거의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과 가축이 있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재산도 없었다. 심지어 소작농이나 노점상이 되려고 해도 최소한의 종잣돈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그 돈으로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어 돈을 버는데, 금리가 너무 높아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간신히 목숨만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돈밖에 남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남녀 간의 성차별 문화가 가난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이유라는 점이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이고 다른 이슬람 국가처럼, 그리고 다른 많은 후진국처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매우 심했다. 여성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여자인 경우가 많았다. 또 이런 문화의 영향 때문에 남자들은 돈이 생기면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해 써버리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약했다.

소액대출 운동

유누스는 이런 현실 진단을 기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대출 운동이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이를 발전시켜 그라민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을 창립했다. 그라민 은행의 사업방식은 간단히 말해서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담보 없이 대출해 준다. 둘째, 주로 여자에게 대출해 준다. 셋째, 대출을 받은 여자들이 그룹을 구성하여 그룹 내의 여자들끼리 서로 돕고 연대 책임의식을 갖도록 한다. 그라민 은행의 담보 없는 대출 방식은 처음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으면 은행이 곧 망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 예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지난 수십 년간 그라민 은행의 원리금 회수율은 거의 100% 가까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라민 은행은 날로 번창해서 20년 정도 지난 1990년대 중후반에는 천 개가 넘는 지점에 2만 명의 직원, 그리고 240만 명의 회원(즉 대출자)을 거느린 대규모 조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린 수많은 사람들, 즉 여자들이 최악의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또 여자들이 자신의 재산과 일을 갖게 됨으로써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고 남자들에 맞서서 자신의 권리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경제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사회발전의 수준이 향상된 것이다. 소액대출 운동의 성공은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지위 향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라민 은행이 단순히 새로운 종류의 금융기관일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일종의 대중적 사회운동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사례는 국제적으로 유명해져서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소액대출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성공사례가 나왔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대출 운동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그라민 은행이 성공한 것은 방글라데시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제, 사회발전의 보편성을 잘 반영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라민 은행 같은 사업방식이 단지 대출 사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많은 분야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라민 은행은 1990년대 후반에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했다.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치품인 이동통신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비밀은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동통신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었고, 소비재라기보다는 생산재로 이용되었다. 가난한 사람들, 마을들에는 전화가 아예 없었다. 유선통신망을 까는 것보다는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 비용이 더 적게 든다. 그리고 마을마다 한 두 사람이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려 그라민 폰을 산 다음, 이걸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줘서 통화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통화료를 받는 장사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장사나 사업을 위해 통화를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동통신 덕분에 전보다 통신이 원활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장사하고 돈을 버는 일이 더욱 수월해졌다. 즉 통신사업은 새로운 장사일 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공익사업 같은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이런 방식의 사업은 분명히 이익을 목표로 하는 영리적 사업이면서도 동시에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 또는 “사회적 비즈니스”라고 불리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유누스가 고안해낸 소액대출 운동이란 그렇게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니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을 현실에 적용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을 가리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 부를 수 있겠다. 물론 소액대출 운동이나 사회적 비즈니스만으로 이 세상 모든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액대출 운동은 가난한 나라의 정부 관료들이 벌이는 이런저런 사업이나 선진국의 원조 같은 것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 자신들이 서로 도와가며 자립, 자활하는 방식이 가난의 퇴치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유누스의 업적은 지금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는 유누스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였다.

실천가 중 한 사람으로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